인쇄 기사스크랩 [제871호]2014-12-15 08:00

들쑥날쑥한 법원 판결, 정확한 정답은 무엇인가?



 
“패키지 일정 중 자유시간 내 여행자 사망 여행사 책임”

비슷한 안전사고에서는 여행사 책임 아니라고 판결

고객 컴플레인 교묘해지는데 가이드라인 없이 우왕좌왕

 
 
패키지 일정 중 일어난 고객 안전사고 관련, 법원이 아리송한 판결로 여행업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여행사의 책임여부와 고객 관리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는 판결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뜩이나 패키지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행사로서도 어느 선까지 고객을 컨트롤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이은신)은 지난 9일 패키지 일정의 자유시간 중 여행자가 사망했다면 해당 여행사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결했다. 사망자 A씨의 가족이 해당 여행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28억 원) 소송에서 5억 7,8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

법원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해 4월 한 여행사를 통해 필리핀 세부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는 패키지 일정에 포함된 관광이나 호핑투어가 아니라 자유시간 중 호텔 앞 전용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질식사 했다. 이후 A씨의 아내와 아들은 여행사와 현지 가이드가 스노클링에 대한 사고 위험성을 미리 알리지 않았고 대처에 미흡했다며 손해배상을 냈고 여행사는 자유시간에 일어난 일을 책임지기 어렵다는 논리로 맞섰으나 법원은 결국 A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망사고가 자유시간에 일어났더라도 여행사가 스노클링 이용권을 포함한 여행 상품을 판매하면서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며 “호텔에서 구명조끼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는 점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야외 활동이 많은 동남아 여행 중 고객 안전사고나 사망에 대한 대처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물러서는 고객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상해에도 불구하고 다소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여행사로서는 패키지 일정 중 포함돼 있는 관광 외 자유시간까지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객들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물론 법원 판결이 항상 고객 편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 11월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5합의에서는 한 고객(C씨)이 대형 여행사를 상대로 2천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고객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C씨는 대형사를 통해 방콕/파타야 패키지 상품을 구매하고 현지 일정에 포함된 미술관을 관람하던 중 냉방기에서 떨어져 바닥에 고인 물에 미끄러져 전치 8주 내지 12주의 상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미술관은 상당히 알려진 관광명소이며 미술관 관람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한 시설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여행사나 담당자가 관광명소인 미술관 바닥의 관리 상태까지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여행사로서는 고의나 과실에 의해 발생한 사고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여행업 담당자로서 미리 파악하고 준수해야 할 내용에 대해 정확한 기준이 없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특히 여행시장이 성장하면서 여행사를 상대로 한 고객 컴플레인이 도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에 기대기에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여행사 위상이나 존재감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다.

패키지여행사 한 임원은 “아예 작정하고 저가패키지를 구매한 뒤 일정 내내 가이드 실수를 기록하고 사진으로 촬영해 돌아오자마자 돈을 요구하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게시판을 도배하거나 온라인상에 욕설을 남기는 블랙컨슈머도 빈번하다”며 “이번 판결처럼 패키지 중 자유일정에서 고객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여행사가 책임져야 한다면 어느 여행사가 패키지 상품에 자유 시간을 추가하겠나. 차라리 일정 내내 다 같이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하다. 여행사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기준을 모르겠다”고 읍소했다.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