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74호]2008-08-22 09:48

[현지취재]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함께 걷는길, 여행

여행의 맛은 ‘고독’이라며 배낭 하나 짊어지고 홀로 길을 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들떠 기차가 떠나갈 듯 수다를 떤다. 또한 ‘엠티 간다’는 거짓말로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밀월여행 길에 오른 연인은 각자의 기대에 마음이 부풀기도 한다. 여행은 곧 동행이다. ‘나’ 또는 ‘너‘와의 동행일수도 있고 ‘우리’와의 동행이 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를 여행하는 동안 장엄한 역사유적을 보고 원숭이에게 먹이도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많을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체험한 여행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을 함께한 이들, 사람냄새 진하게 풍기는 친구들이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이창곤 기자 titnews@chol.com
취재협조=인도네시아대사관 02)783-5675,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02)753-8846.


 

새벽을 깨우는 ‘모닝콜’

‘따르릉~따르릉~’, 설마 했는데 새벽 4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이건 꿈이라며 다시 잠들어보려 했지만 “아침에 해 뜨는 거 봐야해! 보로부두르사원 일출이 최고 멋있어”라고 연신 새벽 기상을 독려한 와시또(인도네시아대사관원)의 외침이 귀전을 맴돌았다. 다소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피로가 쌓인 일행은 일출을 보기 위해서 새벽에 기상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누구하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일 수 도 있다”며 용기를 냈고 일행 전원은 새벽 기상을 결심했다.

때때로 여행은 게으른 삶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찰나의 감동을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시내 숙소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사원 입구에 다다랐다. 아직 해 뜨기 전인데다 조명도 없어 어두컴컴했다. 사원 입구에는 객실과 레스토랑 등을 갖춘 호텔이 있었고 이곳에서 사원의 출입관리 업무도 맡고 있는 듯 보였다. 아직 세계 3대 불교 유적의 경이로움을 맛보지 못한 일행에게 입장권과 작은 랜턴 하나씩이 건네졌다. 입구부터 사원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해가 뜨기 전까지는 앞을 보기 힘들어 랜턴은 필수이다. 일행은 각자 발 앞을 비추며 안내자를 따라 한 발 한 발 사원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경이로움 그 자체

목숨과도 같은 새벽잠을 포기했건만 보로부두르사원에서의 해돋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새벽 4시에 이 사원을 찾을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출을 보지 못했을 뿐 변함없이 해는 떠올랐고 보로부두르사원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초 사원을 오를 때는 거대한 검은 물체만을 목격했는데 날이 밝자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가운데 한 곳인 보로부두르사원의 위용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돌탑 속에 자리한 불상 72개가 중앙의 대형 탑을 둘러싸고 있으며 수많은 불상과 조각들이 이 주위를 또 감싸고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사원은 물론 불국사 석굴암도 본 적 없는 기자에게 이곳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거대한 규모뿐만 아니라 불상과 벽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들은 옛 사람들의 수준 높은 예술 실력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소망의 해가 뜨는 곳

보로부두르사원은 이방인에게만 놀랍고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사원에 올라 뜨는 해를 기다렸으며 아침이 되자 수학여행단 쯤으로 생각되는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한 껏 멋을 부린 학생, 손을 맞잡은 연인 등 어느덧 사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원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이 거대한 사원의 힘을 빌어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일까 이곳에도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돌 탑 속에 자리를 틀고 앉은 불상 72개 가운데 특정 불상의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실제 결혼 후 몇 년간 아이를 갖지 못한 일본인 부부가 이 불상의 코를 만지고 다음해 임신한 몸으로 다시 이곳을 찾아 아이의 건강을 기원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여러 소망을 품어온 기자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 앞에 섰다.

소원을 성취하기가 어디 쉬울 리가 있겠는가. 돌탑 사이로 손을 뻗어 불상의 코를 만져야 하기 때문에 준비운동이 필요했다. 기지개도 펴고 ‘쭉쭉’ 팔도 늘렸다. 드디어 숨을 가다듬고 돌탑 사이로 팔을 뻗어 손끝이 불상의 코에 닿는 순간 기쁨과 환희 보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유는 손끝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가 닿을 만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같은 행위로 소원이 이뤄질 리가 없기에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사원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던 중 불상을 만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한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 기자가 너무도 쉽게 움켜줬던 불상의 코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애타는 소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 가족, 사랑, 일 등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다는 것이 기자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동시에 소원과 소망을 성취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만은 아니라 마음먹고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음을 누군가 일깨워 주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