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45호]2016-07-11 09:23

[취재수첩] [광화문 연가] 김문주 - 취재부 차장




“그 많던 성수기의 추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성수기(盛需期)’.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요가 많은 시기 즉 ‘한창 쓰이는 철’을 뜻한다. 수요가 많아질수록 공급이 많아지고 이는 곧 공급업체 간의 경쟁과 시장 확대를 유발한다. 가볍게 생각하면 한 없이 긍정적이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이내 씁쓸해진다. 한창 쓰이는 철이 지나고 난 뒤에는 뭐가 남을까?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텐데 말이다.

성수기가 다가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7~8월 시즌을 말할 때 성수기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데스크에서도 특별한 이슈가 아닌 이상 성수기 보다는 ‘여름 휴가철’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기자들을 채근한다. 과거와 달리 요사이 여행업계에서 성수기는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아닌 탓이다. 매월 공개되는 여행사 실적에서도 금세 알 수 있지만 트렌드 변화로 일 년 열두 달 내내 여행을 떠나는 수요는 고르다.

오히려 명절 등의 영향으로 단기 연휴가 보장되는 2월(구정), 5월(어린이날, 어버이날), 9월(추석)이 7~8월 실적을 앞지르는 상황도 흔해졌다. 그런가 하면 특정 시즌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피해 비수기여행을 고집하는 사람도 많다. 보릿고개로 여겨지는 3,4월과 11월에도 나갈 사람은 꾸준히 그리고 자주 해외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여름 성수기는 더 이상 소비자의 마음을 당길만한 존재가 아니다. 홍보마케팅 측면에서도 그리 재미있는 테마가 아니며 실적에서도 존재감이 낮다.

모든 상황이 분명한 ‘NO’를 외침에도 불구하고 오직 여행업계만이 지나친 성수기 환상에 빠져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상품 가격을 내리고 무지막지한 경품을 내걸고 일주일 내내 홈쇼핑과 소셜에 특가 상품을 홍보하며 판매를 촉진한다. ‘이 시기에는 그래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어느 여행사 팀장의 자신감은 ‘사실 이 시기가 아니면 고객들이 여행사를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안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여행사의 척박한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달라진 시장 환경과 떠난 고객의 마음을 판에 박힌 휴양지 사진과 가격만으로 붙잡으려는 여행업계의 안일한 태도에는 슬퍼진다. 한 두 달 여름철 장사에 매진해 바짝 수익을 올리고 난 뒤 일 년 내내 먹고 살았다는 업계 원로들의 무용담은 사실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나 가능할법한 추억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추억은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