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67호]2008-06-27 16:20

●제주도<上> 새로운 트레킹 코스 거문오름

“하늘 빛 닮은 한라산 아래, 꿈꾸듯 피어나는 오름”

제주는 싱그럽다. 동남아시아시의 유명 관광지처럼 시끄럽고 번잡하되 그것이 화려함이라 치장하지 않는다. 값비싼 유명 브랜드와 알길 없는 표지판 속에 방황해야 하는 유럽의 어느 도시와도 닮아 있지 않다. 한라산의 곧은 정기와 푸른 바다의 넉넉함을 감싸 안은 제주는 오랜 시간 외세의 잦은 침략과 내부적인 갈등 아래 슬픈 역사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잘 보존된 자연과 생태환경을 벗 삼아 자랑스러운 관광지라는 또 다른 타이틀 아래 힘을 비축해 나가고 있다.

혹자는 제주민들이 객지 손님을 경계하고 배척하는 습성이 있다 불평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한국의 어느 도시인보다 순박하고 따듯한 것이 제주인들인가 싶다.

지난 2007년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지 꼭 1년여가 흐름 지금 제주는 빛 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거듭나고 있다. 바가지 요금이라는 혹평을 받았던 관광 가격 거품빼기부터 이미 잘 알려진 관광지 외에 새로운 관광지와 상품을 홍보하려는 도와 협회의 노력. 더불어 내국인 관광객을 증대시키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까지. 성공이냐 실패냐를 논하기 전에 이 모든 노력과 행동들이 가히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다.

6월 16일, 비 내리는 서귀포 제주공항에 발을 내딛자 마자 차갑고 싸한 공기가 일행을 엄습해왔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서울의 6월만 생각한 탓에 짧은 반팔 티와 바지 한 장 걸친 것이 전부였던 기자에게는 제주의 강한 바람과 굵은 빗줄기가 못내 야속하기만 했다.

“반가운 사람이 오면 비를 내린다”는 한 일행의 객쩍은 농담에 섭섭했던 마음을 푼 건 날씨가 궂든 그렇지 않든 고유한 매력과 짭짜름한 냄새를 풍겨, 찾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제주 자체에 대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 어디에서 눈을 돌려도 그 외관과 무게감을 확인할 수 있는 한라산으로부터 정신적인 충만함과 기를 받고 화산활동으로 발생한 섬 곳곳에 삶의 뿌리를 내린 탓에 드센 여성들이 많다는 이 섬에서 관광을 위한 무리를 발견하는 일은 무척이나 쉽다. 이미 잘 알려진 관광지에는 동일한 색의 티셔츠를 맞춰 입은 단체관광객들로 들끓었으며 ‘XX학교 봄철 수학여행’이라는 현수막을 건 대형 차량은 도로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한라산, 용두암, 중문해안, 마라도, 섭지코지, 천지연 폭포 등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이 일전에 거쳐 간 관광지 대신 요사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제주의 신 관광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된 취지. 때문에 제주라고 하면 오로지 푸른 바다와 맛 좋은 회 정도를 떠올리고 마는 서울 촌놈들이 찾아간 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 오름 지역이었다. 거문 오름 도처에 도착하는 동안에도 하늘은 줄곧 화를 냈다. CD안에 담긴 정교한 사진 보다 못나도 생생한 현장 사진 한 컷을 원하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바람이 그칠 조짐이 없자 결국 직접 발로 탐방하는 대신 차량을 이용, 거문 오름의 초입과 끝을 둘러보기로 했다.

거문오름은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해 있으며 일명 동거문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서거문오름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분화구의 별칭으로 거물창(거멀창)이라 불리기도 하고,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인다하여 거문(검은)오름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7년 6월 27일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으며 정식 명칭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Geomunoreum Lava Tube System). 유산면적은 무려 22,367㎢ (핵심지역 3,303㎢, 완충지역 19,064㎢)에 달한다. 이 동굴계는 해발 4백54m의 작은 화산인 거문오름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다량의 현무암질 용암류(熔岩流:lava flow)가 지표를 따라 북북동 방향으로 약 13㎞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는 동안 형성된 일련의 용암동굴들의 무리를 말한다. 형성시기는 약 30만년 전에서 10만년 전 사이인 것으로 추청되고 있다.

오름 지역을 안내하기 위해 직접 일행을 맞아준 관계자는 올 여름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를 본격적인 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설명하는데 분주했다. 일정 수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할 경우 전문 인솔자와 동행해 오름 곳곳을 직접 살펴보고 자연에 취할 수 있는 코스를 선사하겠다는 것.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녹색의 나무와 이파리들이 바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일종의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거문오름 자체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오름만을 위한 상품 선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설명과 프로그램 구성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넌지시 운을 뗐다. 분명한 것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와 물컹한 진흙에 신발을 다 버리는 낭패를 겪었지만 오름을 둘러보는 일이 꾀나 즐거웠다는 사실이다. 아마 비가 아닌 햇살과 옅은 바람이 함께했다면 보다 흥미로운 추억이 탄생됐을 것이라 확신한다.

검정색 카메라 대신 눈의 조리개를 한껏 열고 높은 하이힐 대신 구겨 신어도 무방한 운동화를 산다. 잠시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을 버리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에 취할 수 있는 감성의 문을 연다. 끝으로 무거운 서류 가방 대신 양 어깨에 힘을 넣어줄 가뿐한 배낭이 필요할 게다. 이곳 거문오름에서 말이다.

제주도=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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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의 탄생

 

거문오름은 지금으로부터 약 28만년전 화산활동을 시작했다. 폭발적인 현무암질 화산활동과 함께 높이 112m의 작은 화산체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화구로부터 막대한 양의 용암을 분출시켰다.

화구로부터 용암류의 유출에 따라 화산체는 말굽형 분화구의 모양을 띄고 있으며 지형 경사를 따라 북쪽으로 흐른 용암류는 약 7km를 흘러 선흘 동백동산까지 추적이 가능하다.

이 용암협곡은 제주도 내에서 최장의 규모를 자랑하며 용암류가 흐른 자리에는 ‘선흘곶’이라고 부르는 자연림이 울창한 특이한 화산지형이 형성돼있다. 또한 거문오름으로부터 유출된 거대한 용암의 표면이 식어서 먼저 굳어지고 난 후에도 내부의 용암이 계속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용암 내부의 긴 공간이다.

거문오름의 역사와 문화

거문오름 일대는 고난과 비극의 제주근대사를 상징한다. 일제감정기와 4.3사건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든 갱도진지 등의 군사시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들 갱도진지는 일본군이 제주도를 최후의 전쟁기지로 삼았던 생생한 역사현장이다. 이어 해방공간에 불어닥친 4.3사건 당시에는 사람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과거 넓고 깊숙한 거문오름 일대는 사람들이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던 생활터전이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거문오름 주변은 국영목장의 무대가 된다.

거문오름의 동·식물

거문오름의 식생은 조림된 삼나무림, 낙엽활엽수림, 관목림 및 초지, 상록활엽수림 등 특징적인 4개의 숲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용암하도를 따라 다양한 함몰구가 발달해 독특한 생태적 입지를 지니고 있으며 난·온대 식물이 공존하는 식생과 식물상을 갖는 곳이다. 또한 식물 종 다양성이 높으며 특히 양치식물의 경우 지리적인 입지가 비슷한 다른 지역에 비해 남다른 식물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징적인 식물로는 일색고사리, 주름고사리, 지느러미고사리, 쇠고사리, 가시딸기 등.

이와 함께 숲에는 곤충류를 비롯한 다양한 먹이자원으로 직박구리, 제주휘파람새, 동박새, 곤줄박이, 흰눈썹황금새와 같은 철새들의 번식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