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58호]2008-04-25 15:48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역사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족자카르타’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족자카르타의 지명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여행객들이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는 알아도 족자카르타는 왠지 낯설기만 하다.

발리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족자카르타는 발리보다 상쾌하다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발리보다 덜 끈적거리고 덜 습한 기분이다. 하지만 실제 이곳은 발리보다 기온이 더 높다. 무엇이 나를 이런 착각에 빠뜨렸을까.








욕심 없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쯤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여유를 부리며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섰다. 이곳은 투구기념탑에서 술탄왕궁까지 약 2km로 이어지는 족자카르타의 다운타운이다.

지난밤 나는 야시장의 모습을 잔뜩 기대하고 나섰다가 너무 늦은 탓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베짝(족자카르타의 전통 교통수단인 삼륜자전거)’ 운전사들에게 호객만 잔뜩 당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기웃기웃 거리는 내 뒷모습을 본 말레이시아 여행객들은 아직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며 8시 반은 돼야 문을 열 것이라고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8시 반까지 기다릴 수 없는 나는 무작정 큰 도로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아직 이른 시간인 탓에 말리오보로 거리의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침 요기를 때우거나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침부터 땡볕이 내려 쬐어 금세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지만 어느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족자카르타 사람들은 수도인 자카르타의 최저 임금 1백10만 루피아의 절반도 안 되는 50만루피아의 임금만으로도 소박한 삶을 꾸려 나간다. 그래도 아무도 자신의 삶을 지겨워하거나 한탄치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셀 수 없이 많은 다신들과 알라신 등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사해 하며 시와 때를 맞춰 하루에 몇 번씩 기도를 하고 제물을 바친다. 그래서 인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아이처럼 밝고 항상 천진난만하다. 이야길 나눌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논쟁을 벌일 때도 심지어 장례식을 치룰 때도 밝은 미소를 보인다.

우연히 만난 장례식 행렬에서 이들의 삶에 대한 철학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장례식 행렬이 마치 축제 분위기 같았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고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내세의 만남을 약속하는 이들의 믿음이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했다.




불교유적 및 예술의 전당

 

족자카르타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바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로 특별하고 우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곳의 건물들은 아담하다. 집이든 학교든 호텔이든 모든 건물을 사원 보다 높이 지을 수 없기 때문에 8층 높이를 넘지 못한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로 1시간을 달리면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와 더불어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사원(Borobudur)을 만난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족자카르타의 밀림 속에 위치해 있다. 엽서 그림 속에 나만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랄까? 주변에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눈 속에서 없어지고 내 눈에는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타난 웅장한 보로부두르 사원만이 가득 들어온다.

보로부두르사원은 단일 사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2천여개의 돌판에 새겨진 부조물에는 석가모니의 수행과 가르침이 기록돼 있다. 석상 하나하나에는 큰 뜻과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 일례로 ‘스투파’라고 불리는 불상들의 왼쪽 손바닥은 허리춤에 하늘로 향하고, 오른손 손바닥은 앞을 향해 내밀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자신감을 뜻한다고 한다. 특히 부조물들을 따라 사원 맨 위에 올라서면 사원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밀림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프람바난 사원(Candi Prambanan)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신’의 전설이 담겨져 있다. 2백여개의 석탑으로 이뤄진 이곳은 8~9세기 경 건설됐다. 프람바난 사원은 세부분으로 나뉘어 기단은 인간계를, 탑신은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세계를 첨탑은 신들이 사는 천상계를 의미한다. 주 사원인 시바의 사원은 높이가 47m에 이르며 탑의 입구는 동서남북으로 4개가 있다. 특히 프람바난의 중심 탑 시바 신전 입구의 부조물은 기원전 2세기에 산스크리트어로 편찬된 고대 인도의 서정시 ‘라마야나’의 이야기가 시계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라마야나의 이야기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주인공 라마 왕자와 그의 아내 시타를 둘러싼 일대기로 악마 왕에 의해 끌려간 시타를 구하기 위한 라마의 활약상이다.

이외에도 도시안의 도시 끄라똔(Kraton)과 보로부두르 사원과 대조적인 부드럽고 우아한 문듯(Mendut)사원들도 볼만 하다.




맨손으로 먹어야 제맛 ‘아얌 고랭’
캡션은 이곳에...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하르띠(Suharti)의 코코넛 가루를 입혀 튀긴 아얌 고랭(Ayam Goreng). 후라이드 치킨과 흡사한 아얌 고랭은 현지인들의 입맛뿐만 아니라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는다. 한국 사람들이 김치 없이 밥을 먹으면 서운하듯 아얌 고랭은 시금치처럼 생긴 깐꿍(Kangkung)을 함께 곁들어 먹어야 제 맛. 한국 닭에 비해 족자카르타 닭들은 말라서 살이 오동통 하지 않지만, 퍽퍽하지 않고 탄탄한 육질을 즐길 수 있다. 포크 대신 라임이 담긴 물에 손을 씻고 뜨거운 고기를 손으로 쭉쭉 찢어 삼발 소스를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수하르띠의 아얌 고랭은 족자카르타 뿐만 아니라 자카르타, 반둥 등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 분점이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이곳에서 난 시간을 잊어버렸다. 욕심도 걱정도 없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걱정과 시름을 잊고 마음껏 웃고, 보고, 느꼈다.

족자카르타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상쾌하다’고 느낀 이유는 족자카르타인들의 해맑은 영혼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도 역시 맨발로 사원의 황토를 밟으며 세월이 들려주는 역사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볼 작정이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김현경 기자 titnews@chol.com

취재협조 및 문의=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주)한국지점

02)753-8846 / www.garuda.co.kr

코리아트래블 02)3705-8855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여행정보]

▲ 위치 : 발리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1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버스로는 약 10시간이 소요된다.

▲ 기후 : 연평균 26~32℃를 유지하는 열대성 기후로 고온 다습하다. 4월에서 9월에는 건기이며 10월에서 3월까지는 우기이다.

▲ 비자 : 발리 공항에서 도착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발급 비용은 US$10.

▲ 시차 :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 언어 : 바하사 인도네시아어

▲ 화폐 : 인도네시아 루피아 (10,000Rp=약 1,000원)

▲ 항공편 : 인천에서 족자카르타로 바로 연결되는 항공은 없어 반드시 발리나 자카르타를 경유해야 한다. 현재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하루 6회 발리-족자카르타 구간을 운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