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31호]2007-10-12 09:39

중국 후난(湖南)성에서 만난 사람(下)
“삶은 시간을 뛰어넘고 사람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살아간다” 봉황성 사람들 장자제의 텐즈산 관광을 위해 대형 주자창에 내리면 길 건너편 상가 위쪽으로 커다란 광고판이 죽 내걸려 있다. 중심부를 차지해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다름 아닌 ‘봉황고성 안내판’이다. 타강 변의 풍경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봉황은 지소우에서 40~50분 가량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맞 닫는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땅이었고, 4000여년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이 곳에 타강이 흐르고, 타강을 따라 성곽이 있고, 마을을 만들었다. 유서 깊은 옛 마을엔 사람이 많다. 동남아에서 찾아온 화교들로 북적인다. 봉황성의 서문인 ‘부성문(阜城門)’으로 들어서면 작은 광장을 가득 메운 커다란 봉황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을 따라 돌다 오른쪽으로 틀면 쭉 뻗은 옛 길이 나온다. 바닥은 돌이요, 좌우엔 전통 상점이 줄지어 있다. ‘석판가(石板街)’다. 묘족과 토가족의 특산품을 파는 거리다. 왕촌 보다 규모가 크고, 역사도 깊은지라 더욱 활력이 넘친다. 토가족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관광객을 유인하는 노인, 크고 작은 술통을 진열해 놓은 양조장, 근대화의 물결이 중국 대륙을 휘몰아치던 시절에 ‘변성(邊城)’이란 현대소설로 필명을 떨친 문호(文豪) 선총원(沈從文)과 중화 민국 초대 내각 총리였던 슝시링(熊希齡)의 고택이 옛 정취를 더해 준다. 골목은 길로, 길은 다시 골목으로 이어지다 동문인 승항문(升恒門)에 다다른다. 한 패의 과일 노점상이 이 곳을 차지하고 있다. 승항문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돌면 긴 성벽이 나타나고, 성곽을 따라 아래 위로 두 갈래 길이 나란히 연이어 간다. 멀리 북문인 벽휘문(璧輝門)이 보인다. 어린 딸과 함께 화관(花冠)을 만드는 여인, 성을 벽 삼아 좌판을 펼쳐 놓고 수를 놓은 아줌마. 아래 길가 노점상은 때 늦은 점심을 먹고, 주먹만 한 돌덩어리 한 개 덩그러니 내놓고는 하염없이 ‘살 자(者)’를 기다리는 남루한 행색의 아저씨, 장문의 호소문을 써 놓은 누런 천 위에 머리를 조아린 걸인, 동관문에 기대어 졸고 있는 노점상 노파. 그 곳에도 삶은 있었다. 벽휘문을 내려서면 푸른 듯 희뿌연 타강이 흐른다. 짙은 청색의 토가족 전통 의상으로 단장한 총각 뱃사공은 손님을 기다리고, 주황색 지붕을 한 조각배는 줄지어 강물에 출렁인다. 저 앞에 홍교(虹橋)가 있고, 강안에는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배어나는 조각루(弔脚樓)가 어깨를 맞대고 서있다. 지금은 강변 여인숙이나 강변 카페로 바뀐 곳. 강가에도 사람은 있었다. 어린 아들을 얹고 빨래하는 아낙네, 물 위에 떠 있는 의자에 마주 앉아 강물에 발을 당군 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타강 변의 풍광을 하얀 도화지에 담아내는 예비 화가, 뱃놀이를 즐기는 손님을 위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민요를 부르는 묘족 아가씨까지. 강은 그렇게 세월 속으로 흘러간다. 장곡영 사람들 웨양시에서 창사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30분여 달리다 다시 시골길로 1시간여 들어가면 ‘장곡영촌’이란 한족 전통 마을이 나온다.참 이상한 마을이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리도 외진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장곡영촌은 1000여 채의 집들이 종으로, 횡으로 엮인 미궁(迷宮)이다. 명나라 홍무 4년(1371년) 시조인 장곡영이 이 곳에 정착한 뒤 600여 년 동안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함께 생활한다. 모두가 일가친척이다. 집과 집 사이 작은 공터 위엔 뻥 뚫린 천창(天窓)이 있고, 그 아래쪽엔 천정(天井)이 있다. 집과 집은 양팔을 벌리면 손에 잡힌다. 그것이 길이고, 골목이고, 커다란 불길을 막을 수 있는 방화로다. 촌락을 에두르며 위계하(渭溪河)가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외부로 통하는 바깥쪽 돌길이 나 있다. 천정을 만든 돌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조각이 남아 있고, 창문과 나무 기둥에는 선조들의 공예 솜씨가 묻어나지만 생활만큼은 오늘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위성 방송 수신기가 달려 있고, 방안에선 TV 소리가 시끄럽다. 워낙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건물 탓에 대낮에도 한밤처럼 어두운 곳이 있는가 하면 천창 아래는 눈 시리게 밝다. 검은 그을린 아궁이, 빗물통 같은 식수 항아리, 너른 공터마다 만들어진 사당과 유교적 교육을 강조하는 가훈이 적힌 현판들. 그 속에서 한가로이 장기를 두는 사람들, 약초를 다듬는 아낙네, 개천 변 난간에 걸터앉아 객지 손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왠지 남 같지 않다. 삶은 시간을 뛰어 넘었고, 사람은 대대로 그 곳에서 끊임없이 살아간다. 글·사진=이창호 (주)스타피언 부사장, 전 스포츠조선 사회레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