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29호]2016-03-14 08:39

[취재수첩] [광화문 연가] 김문주 - 취재부 차장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만만디(manmandi [慢慢的])’란 중국어로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뜻하는 말이다. 모든 일에 지나치게 여유롭게 행동하거나 제 때 시작하지 않고 늑장을 부리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다. ‘만만디’와 비슷한 개념이 바로 ‘코리안 타임’이다. 타인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여행 중 모이라는 가이드의 말을 우습게 알며 5분 정도 늦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습성 말이다.


기자가 일을 처음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중국 관련 행사나 박람회는 평균 30~40분 늦게 시작됐다. 중국 지역을 담당하는 기자라면, 행사 개최 시간에서 딱 30분을 더한 시각에 행사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지금은 물론 그렇지 않다. 간혹 예전의 습관이 나오기는 하지만 적어도 글로벌 무대에서 설명회를 열거나 대규모 트래블마트가 열리면 중국인들은 제 시각을 엄수하는 편이다. 한국은 어떨까? 만만디라고 부르며 은연중에 중국을 무시했던 우리도 달라졌을까?


성수기 판매 촉진을 이유로 2~3월 들어 다양한 트래블마트 및 세미나, 항공사 요금 스케줄 설명회가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다수의 행사가 2월 말에서 3월에 몰렸던 탓에 가뜩이나 실적이 저조한 장거리 지역 담당자들의 혼이 빠진 시기이기도 했다.


기자의 경우 간혹 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혹은 참가한 기자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계획된 시간을 엄수해 행사가 제 때 열리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5분에서 10분 지연은 그나마 애교 수준. 20분 넘게 행사가 지연돼 오히려 일찍 온 사람들이 한가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후배 기자의 하소연은 실로 민망하다.
초청장에 명시된 시간보다 평균 15분 이상 늦게 열리는 행사가 언제부터 당연해졌을까? 친한 지인들끼리 뭉쳐 앉기 위해 테이블 전체를 독점하고 회신 없이 무조건 쳐들어오며 당일 취소를 반복하는 몇몇 임원들의 태도는 여전히 부끄럽다.


비수기마다 열리는 수 많은 행사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규모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도 프로그램 개선이나 다양화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에 앞서 행사에 참여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갖고 바른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 온라인 상의 어느 유명한 회사 사훈(일 잘하는 법)처럼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