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604호]2009-03-27 14:18

[美 네바다주] 19세기 골드러쉬와 21세기 관광객이 만나면?

아기자기한 상점부터 박물관, 호텔, 열차 등 이목 집중

글 싣는 순서

<上> 카지노의 도시, 리노

<中> 액티비티의 천국, 레이크타호

●<下> 은광시대의 향수, 버지니아 시티

“자연적으로 생겨난 서울의 골목이 없어지는 게 안타까워요”

재개발로 사라지는 피맛골의 얘기를 다큐로 만든 프로그램에서 유독 귀를 잡아끄는 어느 일본인의 멘트였다. 특별한 계획이나 형식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생겨난 골목과 그 골목 안을 채우고 있던 온정이 사라지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 첨단화, 미래화라는 명명 아래 낡고 오래된 건물은 모조리 엎어 버리고 자로 잰 듯 반듯한 고층 빌딩으로만 지역을 포장하는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건만 버지니아 시티가 이토록이나 그리운 이유는 풍경과 볼거리 외에도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현대와 조화시킬 줄 아는 그들의 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 네바다주 버지니아 시티 =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 취재협조 및 문의 = 네바다주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5-3232 / www.TravelNevada.com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 02)751-0300 / 버지니아시티 컨벤션 투어리즘 (775)847-7500 / www.visitvirginiacitynv.com


버지니아를 말하다

영화 퀵 엔 데드(The Quick And The Dead)는 롱부츠와 멋스러운 재킷을 거친 샤론 스톤(Sharon Stone)이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진 핵크만(Gene Hackman)과 목숨을 건 사격 대결을 펼친다는 스토리다. 솔직히 워낙 오래된 영화이고 반응 역시 신통치 못해 모든 장면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거주지로 등장했던 리뎀프션(Redemption) 마을 때문. 미 서부 시대를 영화의 시대적 배경 및 테마로 설정하고 있는 이 영화는 권력을 위해 무기를 잡아야 했던 총잡이들과 술과 싸움으로 대표되는 서부 시대에 관한 향수로 가득하다.

원래 미국 서부 지역은 사람이 많이 거주하지 않던 인디언들의 영토였으나, 지난 19세기(1800년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많은 이들이 부를 쫓아 이곳으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소위 개척시대라고도 통칭하는 이 시기, 네바다주 버지니아 시티(Virginia City) 역시 끊임없는 도시의 발전과 번성을 누리며 하루하루 유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갔을 테다.

리노(Reno)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쯤 떨어졌으며, 시에라네바다산맥 동쪽에 위치한 버지니아 시티는 지난 1859년 금·은 광산이 개발되면서 초기 이주민들이 정착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리노에서 차를 통해 40분 정도를 힘껏 달리면 도착할 수 있으며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북촌한옥마을과 모습이 닮아 있다.

마을 첫 입구부터 1850년이라고 적힌 빅토리아풍의 건물과 서부시대의 드레스를 입은 관계자들을 만났다. 서부 개척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그들의 정신과 역사를 후세에 널리 전파한다는 취지 아래 잦은 보수나 리모델링 작업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마을을 오가는 차량과 현대적 옷차림의 관광객들만 아니면 이곳이 정녕 21세기 미국의 한 도시인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버지니아 시티는 영국이 미국을 지배할 당시 영국의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처녀(Virgin Queen)인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 19세기 광산업의 최대 수혜 지역이었으며 수많은 금광과 은광을 채굴하면서 광물을 운반하기 위한 열차 소리로 언제나 시끄러웠던 도시가 버지니아였다. 이어 한 차례의 부흥기가 끝나고 현대에 와서는 퇴색한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도시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완벽한 21세기 형 관광도시로 거듭나는 방법을 택한다.

두 발로 걷는 도보여행, 이곳이라면 완벽

버지니아시티에 도착했다면 천천히 두 발로 걸으며 마을 곳곳을 여행하는 일정을 권유하는 바다. 기자의 경우 방문객 센터에서 미리 마련해 준 전통카트를 타고 2시간 정도 마을과 관광지를 둘러봤는데 날씨만 춥지 않다면 직접 마을 맨 아래부터 위쪽까지 거니는 일이 더욱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곳곳에는 영화에서나 봐 왔던 옛 술집과 각종 바, 박물관, 미술관, 기념품센터 등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각 건물마다 맨 꼭대기에 세워진 연도를 표시했는데 1850년 정도라면 이 마을에서는 아직 소년(?) 수준. 그만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래된 건물이 많은 편이다.

개별여행자라면 날씨가 춥지 않은 봄과 가을에 이곳을 찾아 방문객센터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지도와 마을 정보를 숙지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유용하다. 지도에 따라 가고 싶은 코스를 정하고 직접 이동하면서 목이 마르면 술집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사진을 찍는 것도 좋겠다. 지도에는 어트렉션, 서비스, 음식, 숙소 등이 각 색깔별로 표시돼 있으며 각 거리마다 ABCD 같은 이름이 붙어져 있어 길을 찾기에도 편리하다.

특히 버지니아시티에 위치한 마크 트웨인(Samuel Langhorne Clemens) 박물관은 놓칠 수 없는 하이라이트. 만약 버지니아 패키지 상품이라면 흔히 옵션으로 분류돼 추가 여부를 따져야 할지도 모른다.

마크 트웨인은 당대의 소설가이자 기자이며 우리에게는 ‘톰 소여의 모험’으로 친숙한 인물.

박물관은 그가 버지니아 시티에서 거주할 당시의 모습을 빠짐없이 재연해 놓았다. 1층에는 인형을 파는 상점이 들어서있고 지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가면 눅눅한 지하 창고 속 18세기 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책상과 종이, 서적, 초상화 등이 구비돼 있으며 어두운 조명이나 박물관 내부의 생김새 탓에 약간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대의 문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는 일단 후한 점수를 내렸다.

이 밖에도 가족 혹은 친구 등 일정 수 이상의 인원들이 함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버지니아 트러키 열차도 미리 예약을 하면 열차에 탑승한 채 코스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빅토리아 양식의 고성에서 숙면을!

몇 시간 안에 숨 가쁘게 버지니아를 둘러보는 일이 자신이 없다면, 혹은 머리를 비우고 좀 더 천천히 버지니아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B&B(Bed and BreakFast)호텔을 선택해보자. B&B호텔은 버지니아 시티 내에 자리 잡은 일종의 게스트하우스를 뜻한다.

빅토리아풍의 옛 저택을 최신식으로 보수해(단, 저택의 겉모습이나 구조를 완벽히 없애지는 않았다) 샤워시설과 주방 등의 각종 편의시설을 구비해놓고 여행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준다. 대부분 2~3층 이상의 복층 구조로 설계돼 있으며 내부는 유럽 왕실의 느낌과 미 중산층의 시설을 혼합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룸에는 개인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달려 있으며 특별히 장애우를 위한 룸도 마련돼 있다. 이용 가격은 미화 99-199달러까지 다양하며 동반자 할인 등이 혜택도 주어진다. 평균적으로 오후 3시 이후에 체크인을 하면 오전 11시까지는 체크아웃 해야 한다.

네바다주 연재를 마치며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여행지에 대해서는 의의로 쉽게 그 곳의 이미지를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한다. 네바다주 역시 아직까지 한국시장에서는 ‘라스베이거스, 도박’으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비평하자는 것이 아니라 베가스는 네바다주가 보유한 다양성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해외여행객들의 수가 많아지고 여행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누구나 가는 곳, 혹은 누구든 갈 수 있는 곳에만 집중하는 한국의 여행 문화가 조금은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믿는다. 네바다주의 즐길거리, 다양성 혹은 새로운 세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