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1059호]2019-01-04 11:41

일본 가와고에


 
 
작은 에도, 순수의 시간을 만나는 법
 
 
일본 옛 정취와 풍경 거리 곳곳에 남아 있어

다양한 체험과 먹을거리 앞세워 소도시 여행객 공략
 
 
‘올드 앤 뉴(Old and New)’. 일본 관광을 설명하는 가장 상징적인 문구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일본은 여행에서 오는 즐거움의 폭이 넓고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최신 건물과 시스템을 갖춘 대형 복합몰,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아이템과 소품, 각종 브랜드들이 일본의 New라면, Old는 전통적인 문화, 고즈넉한 거리, 옛 건물과 소박한 장식 등 은연중에 우리가 바라는 감성적인 일본의 모습을 토대로 한다.
일본 가와고에는 이러한 예스러운 일본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다. 가마쿠라, 닛코에 버금가는 문화유산과 역사를 보유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역사도시>로도 인정됐다. 도쿄를 여러 차례 여행했다거나 서울과 비슷한 도시의 단편적인 모습에 흥미가 없다면 가와고에를 적극 추천한다. 내가 몰랐던 일본, 새로운 도쿄의 매력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글·사진=여행작가 김빅토 victoriakim916@gmail.com
 
 
“시간여행자, 에도시대로 떨어지다”
 
무더위로 심신이 지쳤던 지난해 8월, 도쿄 여행 중 하루 시간을 비워서 가와고에로 향했다. 도쿄가 싫지는 않았으나 매일 똑같은 건물과 똑같은 거리, 관광지의 사람들과 소음을 마주하다 보니 잠시 도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자란 이기적인 존재라 때로는 도시의 편리함이 싫었다가 금세 도시로 돌아오는 법이다. 전철을 통한 이동에는 약 한 시간이 필요하다. 가깝지는 않은 거리인지라 2~3일 일정으로 도쿄를 찾았다면 사실은 무리다. 더욱이 볼거리가 화려한 편은 아니어서, 정통적인 일본을 원한다면 가마쿠라에서 제대로 보거나, 아니면 아예 아사쿠사에서 짧게 속성으로 끝내라고 권하고 싶다.

도쿄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가와고에는 도쿄에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관광지임에도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 더욱 희귀하다. 일본 사이타마현의 남서부에 위치한 중심지로 에도 시대에는 성시로서 발전했고, 시 중심부에는 당시의 거리가 남아 있다. 일본의 과거 풍경을 만끽할 수 있고 곳곳에서 풍기는 고즈넉한 정취는 여행자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특히 창고 형태의 건축양식인 구라즈쿠리 건물과 신사 불각이 늘어서 있는 거리의 풍경은 누가 뭐래도 에도(도쿄의 옛 호칭)를 떠올리게 한다.
 

가마쿠라가 작은 교토인 것처럼 가와고에는 작은 에도이다. 에도는 일본 도쿄의 옛 이름으로, 에도 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말한다. 에도 막부가 일본을 지배하던 1603년부터 1868년까지 막부의 중심지였다. 과거 에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자 지리,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며 부흥했던 성지였다. 에도는 도시가 아니라 한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인 셈이다. 가와고에는 에도 시대의 북쪽 요충지로서, 에도와 끊임없이 연결되며 마을 전체가 성장해 온 역사가 있다. 경제와 문화면에서도 에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람들의 자부심 또한 강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가와고에를 ‘에도와 같은 마을(작은 에도)’ 그리고 친밀감을 담아 ‘코에도(小江戶)’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가마쿠라처럼 일본에는 작은 교토가 산재해 있지만, ‘작은 에도는 가와고에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와고에가 지니는 의미는 유일하고 남다르다.

순환 버스를 타고 전통가옥 거리에 도착했다. 길가 양 주변에 오래된 건물과 골목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 일본의 가옥들은 가옥 부지에 가재도구를 보관하는 ‘구라(창고)’라는 견고한 건물을 함께 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내화건축으로서 불에 잘 타지 않아 가와고에에서는 주로 주택 및 점포의 건물로 활용되었다. 이 전통가옥이 가와고에의 최고 재산으로 지금도 100년 전 거리의 풍경을 보존하고 있다. 커다란 기와와 낡고 검은 벽, 두툼한 여닫이문까지 운치 있는 전통가옥들이 늘어선 1번가 거리 주변은 가와고에 관광의 필수 코스다. 비슷해 보이지만 한 채 한 채 각각 구조가 다르며, 개성도 있어 당당한 품격마저 감돈다. 특히 1792년에 지어진 오사와가 주택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비단포목의 거상에 의해 세워졌는데 큰 화재에도 살아 남아 이후 가와고에의 상가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1층에서는 민속공예품을 팔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인력거를 끄는 인력거꾼과 관광객들이 보인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인력거를 타고 가와고에 구석구석을 관광하는 방법도 있지만, 뭔가 선뜻 끌리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두 발로 직접 걷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듯하다.

에도의 정서를 간직한 전통가옥과 상가, 다이쇼 시대의 낭만적인 향기가 감도는 서양식 근대건축, 시타마치(도시의 상업지역)의 모습이 남아 있는 쇼와 시대의 뒷골목 그리고 백화점과 신식 건물 등이 들어선 새로운 카와고에까지.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시대의 일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여행자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현대와 전통의 아름다운 조화”
 
정신없이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를 훌쩍 넘겼다. 잘 챙겨 먹는 것이 여행의 첫 번째 원칙임을 아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들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과자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시야요코초’ 라고 불리는 과자 골목은 약 80m의 좁은 골목길에 막과자, 사탕, 엿, 전병,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가와고에는 골목이 워낙 많아 자칫하면 찾기 힘들지만 과자 골목만큼은 정말로 단 냄새를 풍긴다. 전병과 막과자 등 많은 일본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전통 간식부터 간장으로 고소하게 구워낸 구운 경단, 길이 95cm의 흑설탕 과자 등 여럿이 나눠먹고 싶은 단것들이 시야를 채운다. 모든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동전과 지폐를 꺼내 과자를 사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바빠 보일지언정 지친 사람은 없다.

에도 시대의 경관을 물려받은 중요한 유산이자 가와고에 거리의 심볼인 ‘토키노카네(시간의 종) 종루’를 보기로 했다. 에도시대 전기부터 종을 울려 시각을 알려왔다니, 그 역사를 생각할수록 신비할 따름이다. 지금도 6시, 12시, 15시, 18시까지 하루 네 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현재의 탑은 4대에 해당하며 지난 1893년 가와고에 대화재 직후 재건됐다. 탑 모양으로 우뚝 선 갈색의 종루는 길 어디에서도 여행자의 시선을 묘하게 잡아끈다. 참고로 시계 종탑으로 가는 골목 안에는 다양한 맛 집과 카페, 옷이나 소품 등을 파는 소박한 상점이 오밀조밀 붙어 있어 오래된 거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키타인 절은 헤이안 시대에 지카쿠 대사 엔닌에 의해 건설된 절이다. 내부에는 에도시대 에도성의 모미지야마에서부터 이축된 서원이나 전당이 있다. 정월 3일에는 시장이 열려 개운, 액땜, 집안 평온, 안전 등을 기원하는 제식이 행해진다. 이 밖에 히카와 신사는 남녀를 맺어주는 산으로서도 유명하며 사람들의 소원이 씌워진 그림 액자도 많이 봉납되고 있다.

가와고에 축제 회관은 3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가와고에 축제 관련 다양한 사진과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영상과 음성 연출을 통해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관광객들은 즐겨 찾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축제는 다르다. 가와고에 축제는 일본 중요 무형 민속문화재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과 사자탈 등을 화려한 수레에 싣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와 거리를 위풍당당하게 행진한다. 특히 사람들이 서로 솜씨를 겨루는 하야시(피리, 북, 징, 춤 등으로 장단을 맞추거나 흥을 돋우기 위한 것)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색색의 불로 거리가 물들고 사람들은 다 같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절정을 만끽한다. 매년 10월 둘째 토요일과 셋째 일요일에 개최된다.
가와고에 같은 경우는 새로운 건축물도 전체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연구되어 신·구가 조화를 이룬 도시 건설을 자랑한다. 그중 하나가 사이타마 리소나 은행이다. 이는 다이쇼 시대인 1918년에 세워진 청동색 돔 지붕 형태의 옛 양옥 건물로 지금도 실제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검은색 벽이 늘어선 거리에서 눈에 띄는 흰색 벽에 창문이 세로로 길게 나 있어 세련된 인상이다.

당일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 미처 돌아보지 못한 주변 풍경과 짧은 일정 상 방문할 수 없었던 거리의 건물들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완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미련이 남고 의도하지 않는 실수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여행이다. 시간 여행은 자주 반복하면, 현재의 삶을 가치 없게 만든다지만, 두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가와고에로 두 번째 시간 여행을 떠날 때가 다시 오고 있다.
 
 
 
 
▲이동 및 즐기는 법
전철을 이용할 경우 신주쿠, 시부야 역 등에서 가와고에 역 내지는 혼가와고에역까지 이동한다. 전철 소요 시간은 50분 수준. 이케부쿠로에서는 토부 토조선으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요코하마에서는 직통 전철로 78분이 소요된다. 혼가와고에역과 가와고에역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다.

하네다공항, 나리타공항에서 직통 버스도 운행하며 하네다에서는 90분 나리타에서는 120분이 소요된다. 역에 도착해서는 버스를 이용해 현지 관광을 즐기자. 먼저 코에도 순환 버스는 가와고에역 서쪽 출구 2번 승차장에서 출발하며 주요 관광지를 연결한다. 전통 거리에 어울리는 옛날 분위기의 버스가 특히 인기. 서쪽 출구를 출발해 혼가와고에역, 키타인 절, 가와고에성, 혼마루고텐, 히카와신사, 쿠라즈쿠리 전통가옥 거리, 과자골목 등을 순회한다. 키타인 절 앞 경유 코스와 쿠라즈쿠리 전통가옥 거리 경유 코스 2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이 밖에 가와고에역 동쪽출구 3번 승강장 앞에서 출발하는 명소 순환 버스도 있다. 1일 이용권 가격은 성인 1인 300엔(약 3,082원)으로 역사 내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구매 가능하다. 참고로 토요일과 휴일, 경축일에는 무료 관광 가이드 서비스도 제공한다. 키타인 버스 정류장에 빨간 양복을 입은 관광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으며 가와고에의 명소나 키타인 절에 관한 종합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천천히 거리를 둘러보고 싶다면 자전거도 좋은 대안이다. (시모 자전거)점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광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으며 요금은 개별적으로 문의(049-222-3737)해야 한다. 매주 수요일과 둘째 주 목요일은 휴일이다. 숨겨진 골목이 많아 자전거를 타고 거리 곳곳을 다니는 일도 재밌지만,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많은 보행자와 차량이 오가는 만큼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장어 요리 먹고 기모노 체험 즐기기
예로부터 가와고에산 고구마는 맛이 달고 품종이 좋기로 유명했다. 고구마는 일반적으로 찌거나 구워서도 먹지만 과자와 간식, 달콤한 디저트는 물론 카이세키 요리로도 즐길 수 있다. 특이하지만 가와고에에서는 고구마 가루를 이용해 소바나 우동 면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맛도 좋지만 면의 굵기가 전부 달라 입안을 자극하는 면의 식감과 모양새가 더욱 재미있다. 특히 이 지역의 고구마 경단은 소박하면서도 순한 맛을 즐길 수 있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 이 외에도 고구마 소와 신선한 생크림을 곱고 흰떡으로 싼 전통가옥 모양의 ‘다이후쿠’는 안에 들은 고구마를 꿀에 절여서 달콤함이 일품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구마로 된 간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과자 거리는 늘 붐빈다.
 


에도시대부터 전통을 지켜온 장어구이 역시 가와고에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각 가게마다 오랜 시간 비밀리에 전해지는 숙성된 수제 소스를 사용해 한층 깊은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흰쌀밥과 간장 양념을 사용한 장어구이를 함께 먹는 도시락이 대표 음식. 가격은 다소 높지만 제대로 된 풍미와 맛을 느낄 수 있다.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메뉴판이나 사진 메뉴 또한 속속 늘어나는 추세. 주문은 어렵지 않다.

기모노 체험은 사실 도쿄 어디에서도 가능하지만, 가와고에에서는 한층 특별하다. 특히 매달 18일은 ‘가와고에 기모노’의 날로 여러 가게에서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점원들이 손님을 맞는다. 흔한 옷 갈아입기가 아니라 보다 품격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기모노를 입고 다과회에 참여해 다도를 배우거나 명소에서 사진을 찍거나 유유자적 거리를 산책하면서 에도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문의 049-222-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