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1027호]2018-04-27 07:16

일본 가마쿠라

리틀 교토 신 그리고 나와 만나는 시간
 
 
대불상 포함 120여 개의 절과 40개의 신사 위치

도보 여행지로 인기, 에노시마 바다와 온천까지 즐길 수 있어
 
 
<편집자 주>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사원도 절도 좀처럼 큰 관광지가 나오지 않았다. 낯선 지역에 떨어졌다는 흥에 취해서 표지판을 따르지 않고 막무가내로 걸은 것이 화근이었다. 굽이굽이 꼬아진 산 중반에서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나 가이드북의 지도는 그저 무용지물.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서서히 지쳐갈 때쯤 결국 산 하나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자 바다가 보였다. 그러고 보면 가마쿠라는 삼면이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지역이다. 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물빛과 푸른 냄새는 이내 길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다.
여행 중 의도치 않게 만나는 순간은 여행의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된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곳, 가마쿠라 얘기다.
글·사진=여행작가 김빅토 victoriakim916@gmail.com
 
 
 
“일본 불교문화 및 막부시대의 중심지”

기타 가마쿠라역에 내리자마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3개 국어가 사이좋게 들린다. 기모노를 입은 중년의 여인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느라 정신이 없는 배낭여행객들,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깃발 부대의 단체관광객까지. 모두들 들뜬 모습이다. 신주쿠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도쿄 외곽에 떨어져 있는 가마쿠라는 도쿄와는 상반되는 전통적인 매력으로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다. 요코하마(橫浜)의 남서쪽, 후지사와(藤澤) 동쪽, 즈시(逗子)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남쪽은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사가미만과 접하고 있는 가마쿠라.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지 조건이 뛰어나 12세기 말부터 14세기 중반까지 막부 시대의 군사/정치적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도쿄로 정치의 중심을 옮기기 전까지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며 역사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찬란한 일본 불교문화의 중심지이자 막부 시대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찰(120개의 절과 40개의 신사)들이 있어 근대에 들어 관광지로 발전했고 남쪽 에노시마는 서핑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가마쿠라의 남쪽에 자리한 에노시마는 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무대가 되면서 한국관광객들의 성지순례 목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지형 안에 가마쿠라 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신사와 사찰이 있어 오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으며 사람들은 리들 교토라고 이 지역을 칭송한다.
 

흔히 에노시마ㆍ가마쿠라를 동시에 묶어 쇼난 지역이라 부른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정의가 다소 모호한 쇼난이라는 이름보다는 가마쿠라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고. 도쿄에서 가까운 해변 관광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여름이 되면 해수욕과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역의 상징인 에노시마 섬은 해안과 다리로 연결돼 있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에노시마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전망 등대를 비롯해 식물원, 온천, 수족관 등이 있다. 이 밖에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중심 거리도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가마쿠라는 돌아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역이다. 중요한 사찰만 들러도 6~7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맘 잡고 도시 전체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12시간은 필요하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지 않으면 하루 일정이 꼬일 수 있으니 조금 서둘러야 한다. 단, 도쿄를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짧게 방문했다면 외곽 여행은 무리다. 여행 기간이 길거나, 도쿄를 이미 경험해서 다른 일본 문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소원을 빌어봐”
 
4월 초 가마쿠라는 봄 대신 녹음이 한창이었다. 이미 지난 해 여름과 겨울, 가마쿠라를 한 번씩 찾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 입어 늘 새로운 여행지를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사들을 둘러싸고 있는 숲과 오래된 나무에서 익숙한 여름을 느꼈으니 정말 여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가마쿠라에는 오산이 존재한다. 다섯 개의 대표적인 신사를 뜻하는 말로 ‘엔카쿠사-도케이사-조치사-겐조사-주후쿠사’ 순으로 들러볼 수 있다. 오산 중 제1사찰로 꼽히는 겐초사는 봄에 방문하면 벚나무와 운치 있는 조경으로 상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절 문턱을 열고 들어가며 눈앞에 보이는 법당과 오래된 나무의 까칠함이 은은함을 풍긴다. 1253년 경 창건됐으며 중국의 가람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국보인 범종을 비롯한 중요 문화재가 많다. 규모가 상당해 둘러보는데 시간이 꽤 소요된다. 주지가 거주하는 장소였던 방장(용완전)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으로 앞쪽에 자리한 일본식 정원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장소다.
 

특히 절 내부에 번쩍거리는 화려한 당문(국가 중요문화재)은 16세기 후반의 일본 지붕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옻칠 사각문으로 세련된 기교가 돋보이는 쇠장식이 각처에 사용됐다고 한다. 1628년 도쿄시바의 조조지에서 도쿠가와 2대 장군인 히데타다의 부인, 오고노카타의 사당 문으로써 세워졌고 1647년, 불전 서래문과 함께 절에 기부돼 방장의 정문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엔카쿠사는 기타가마쿠라 역에 내려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찰이자 가마쿠라 오산 중 제2의 사찰. 중국의 경산, 만수사를 모방하여 만든 사찰이다. 1282년 호조토키무네가 설립할 때 땅속에서 엔카쿠교가 들어있는 석궤가 나와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국보인 사리전과 범종을 비롯한 중요 문화재가 많은 사찰이다. 조치사는 1283년도에 창건됐으며 11개의 탑두 사원이 있고 500여 명이 묵을 수 있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으나 막부 시대가 저물고 잦은 지진이 발생해 사원들이 파괴되면서 지금은 작은 사찰로 남았다. 경내에 있는 칠복신상의 배를 쓰다듬으면 건강해 진다는 속설이 있다. 쓰루가오키하치만궁은 가마쿠라 막부의 상징이자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행사도 많아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다. 봄이 되면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또 새해가 되면 새해 소원을 빌기 위해 계단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참고로 4월 셋째 주 일요일에는 가마쿠라 마쓰리(축제)가 열리는 만큼 이 기간에 방문해 보자.
 

가마쿠라의 상징을 보고 싶다면, 고토쿠인 절 즉 대불을 빼놓을 수 없다. 가마쿠라의 하세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가마쿠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일본 3대 불상 중 하나로 꼽힌다. 대좌를 포함해 높이 13.35m, 중량은 약 121톤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로 눈 앞에서 마주한 대불의 위압감은 상당하다. 가마쿠라 관광의 백미 중 하나로 인기가 많아 일 년 내내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진과 화재로 대불전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바깥에 대불상만 남아있는 상태. 내부도 관람이 가능한데 입장료 20엔을 추가로 내야 한다. 내부가 좁아서 인원을 한정적으로 받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하세다는 736년에 창건된 사찰이자 가마쿠라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사찰로 화재와 지진으로 무너진 경내를 재건하여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 사찰의 관음당에는 십일면 관음보살이 있는데 11개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높이가 무려 9.18m다. 그 앞에 있는 목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세사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고 가마쿠라의 바다를 향하고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다. 6월 중순 절을 방문하면 경내를 물들인 수국을 볼 수 있는데, 하얀색과 연보라의 수국이 그림처럼 퍼져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에노시마에서는 큰 볼거리보다는 아름다운 바다와 섬을 둘러보는 것이 핵심 일정이다. 특히 다리를 건너면서 백사장과 바다를 볼 수 있어 연인끼리 손을 잡고 걷기 좋다. 다리를 건넌 다음에 용연의 종을 울리며 사랑을 맹세하고 지고가후치 바다로 자리를 옮겨 일몰을 보는 것이 필수 코스다. 또한 이 지역은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에노시마 입구 바로 근처에 지하 1,500m의 천연온천을 최대한 활용한 스파도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사람들은 가마쿠라에서 제각각 자신만의 신을 만난다. 유명한 절과 신사를 찾아다니며 두 손을 합장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소원을 꺼내든다. 어쩌면 가마쿠라는 관광지를 넘어 치유 공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교통 : 가마쿠라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방법은 없다. 본인이 머무는 숙소가 동쪽에 있다면 도쿄역에서 JR요코스카선을 탑승하고 서쪽에 있다면 신주쿠, 시부야역에서 JR쇼난 신주쿠 선을 이용해 가마쿠라로 이동한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교통료는 920엔 수준(한국 돈 9,200원 정도).
 
■여행 팁 :
1)가마쿠라 여행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볼거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사찰을 둘러보고 에노시마까지 관광하려면 거의 11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사찰을 제외하고 점심 시간을 줄여도 7~8시간이 필요할 정도. 오전 일찍 기타 가마쿠라역에 내려서 주요 신사들을 둘러보고 에노시마 쪽으로 도보로 이동할 것. 이후 에노덴을 탑승해 나머지 지역을 관광하자
 
2)현지에서의 이동은 에노덴 1일 승차권을 구매하는 편이 유리하다. 가마쿠라 마을을 지나는 작은 전차인 에노덴의 기본 요금은 190엔 정도. 가마쿠라 역에서 하세를 거쳐 에노시마에 가려면 왕복 900엔 정도가 소요되지만 1일 승차권은 600엔으로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3)가마쿠라에 위치한 절들은 대부분 200~300엔의 입장료를 받는다. 사전에 동전을 바꿔가는 편이 좋다. 한국어 브로슈어가 있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영어 브로슈어를 마련해 뒀다. 절 내부로 들어 갈 때는 신발을 벗고 내부 법당 사진 촬영은 금지다
 
■추천 일정 : 신주쿠역-기타 가마쿠라역-엔카쿠사-도케이사-조치사-겐초사-주후쿠사-쓰루가오카하치만궁-에노덴 가마쿠라역-에노덴 하세역-하세사-가마쿠라 대불-하세역-가마쿠라역-신주쿠역(약 7시간 반 소요)
 
■환율 : 현재 엔화는 100엔당 993원. 거의 1대1로 비슷함. 일본 가마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