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88호]2017-06-23 07:45

[칼럼] 이용근 <12>꿈 부자 아빠와 마지막 산티아고 도보여행!
 
여행에서 얻은 자립심을 통해 굳건한 성년이 됐다

 

이용근-글로벌헬스케어학회장, 국립공주대학교 국제의료관광학과장

 
<12>꿈 부자 아빠와 마지막 산티아고 도보여행!

서울대학교 국악과 피리 전공을 한 이규영은 공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악학교에 입학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꿈도 없이 이미 만들어진 국악인의 로드맵을 따라가며 지쳐가는 삶에 담벼락을 치고 삶을 뒤돌아보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유로운 여행처럼 인생을 살아온 젊은이에게도 어느새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마지막 관문인 대학입시를 통과해야만 하는 대입 수험생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입시가 대한민국 젊은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터닝 포인트라고 한다면, 이를 위한 시작점을 찾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의 씁쓸한 이별이 선행돼야 한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대입의 시작을 알리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독립을 위한 아빠와의 마지막 도보여행을 떠났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삼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중3 겨울방학 산티아고
순례길 800㎞ 종주여행’
규영 : 아빠! 난 지금 산티아고 여행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아빠 : 이번 여행은 시간 낭비가 아니야.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너를 위한 특별한 시간이야!
규영 : 그럴까? 과연 산티아고 800㎞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아빠 : 그래! 넌 할 수 있어. 아니 넌 스스로 해내야만 해!
규영 : 내가 이렇게 여행하는 동안 친구들은 나보다 피리 부는 연습을 더 많이 할 거야. 며칠만 안 불어도 얼마나 실력이 뒤로 쳐지는지를.
아빠 : 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너의 시각을 바꾸는 거야.
규영 : 그게 뭔데.
아빠 : 우리 인생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
규영 : 아~! 대학입시는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고, 나 자신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말 아냐?
아빠 : 그래! 지금까지는 너는 세상을 여행하듯이 자유롭게 살아왔잖아.
규영 : 뭐가요? 내가 자유롭게 세상을 살았다고요? 얼마나 아빠의 틀 안에서 살아왔는데요.
아빠 : 그랬던가? 고1부터 시작되는 대입시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낙타가 자신의 몸집을 이유 불문하고, 줄여서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하는 거야. 어떤 스펙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버려가는 삶의 다이어트가 필요한 거야.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는 싸움이 시작되는 거야.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끈기와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본 도쿄의 닛코에 여러 번 여행한 적이 있지?
규영 : 네! 승영이 형이랑 전국 일주 배낭여행할 때도 갔고, 나연이네랑, 관표네랑 여행할 때도 갔고, 많이 갔잖아요. 닛코를 여행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여행했다고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그리고 신사유람단이 우리나라에서 닛코까지 여행을 하기도 했고요. 161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폐를 모신 도쇼구(東照宮)가 있기도 하고요.
아빠 : 그렇지! 근데 거기에 세 마리 원숭이 산자루가 있는 거 알지?
규영 : 네~! 알아요. 승영이 형이랑 처음 갔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보고 그냥 밤길을 걷고 왔잖아요. 마지막 기차가 5분 밖에 안 남아서. 도쇼구(東照宮)에서 역까지 달려서 가까스로 기차를 탄 적도 있잖아요. 하나는 귀를 막고 있고, 하나는 입을 막고 있고, 하나는 눈을 막고 있는 거잖아요.
아빠 : 그렇지! 잘 기억하고 있네. 이제부터 벙어리, 귀먹거리, 눈봉사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야! 근데 그것이 말처럼 쉽겠니? 이제 몸으로 실천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빠,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너가 직접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란다.
규영 : 그럼, 산티아고 여행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거야?
아빠 : 중학교 때 공주에서 서울에 혼자 올라가서 잘 해왔지만, 지금부터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과 만나기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거야. 모든 것들을 참고 견디는 힘, 특히 체력적으로 견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결국,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하면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무너지는 법이거든.
규영 : 나도 알아! 체력이 안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우리 국악인은 특히 몸으로 먹고 사는 거잖아.
아빠 :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졌던 것을 먼저 버려야만 된다는 거야. 버림의 미학이지. 하지만 우리 교육에는 배우기만 할 뿐이지 배운 것을 버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은 없어. 여행학교가 바로 버림의 미학을 배우는 곳이야. 우리가 뭔가 다른 것, 더 먼 곳, 더 깊은 세계로 가고자 할 때 오래된 세계를 놓아 버림으로써, 즉 씁쓸한 이별을 통해 달콤한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이 바로 여행이야.
규영 : 응! 아빠~! 뭔가 알 것 같아. 컵에 뭔가가 있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컵 속에 있는 것이 아깝지만 버려야 한다는 말이지?
아빠 : 그래! 맞아. 너가 먹고 싶은 것을 컵에 담아 먹는 것처럼, 컵은 항상 비워져 있어야만 해! 그래야만 너가 먹고 싶은 것을 바로 담을 수가 있거든. 컵이란 그렇게 담았다 비웠다 담았다 비웠다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처럼, 너의 삶도 담았다 비웠다 담았다 비웠다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해. 컵의 물도 아깝다고 비우지 않고 담고만 있으면 썩게 되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번 산티아고 800㎞ 걷기여행은 비우는 미학을 배우는 아빠와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대학 입학을 하면 너는 성인이 되고, 자립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너 스스로 해 낼 수 있는 자립심이 아빠가 주고 싶은 가장 큰 마지막 선물이란다.
규영 : 자립하라는 것은 아빠가 지금까지 나에게 강요한 것이잖아.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도와주지도 않고, 옆에서 힘들면 그만 두고 여행 가자고 했잖아. 그리고 내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내 스스로 공부해서 당당히 국악중학교에 입학해 서울로 혼자 올라와서 지금까지 잘 알아서 하고 있으면 자립심 만땅 아냐?
아빠 : 그렇지! 자립심 만땅이지! 그것이 너의 고정관념이니까. 그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한 또 다른 여행이 필요한 거야. 앞에서 말했잖아. 대학입시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더 큰 뜻을 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더 큰 마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거야. 아마. 대학입시 때, 10분이 너의 미래를 결정하는 거야. 이 때 좋은 음악을 담을 수 있는 훈련만이 필요할 뿐이야! 담아서 가져 갈 수는 없잖아. 그 10분을 위해서 3년이란 시간을 준비하는 거잖아.
규영 : 아빠 말을 들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 대학 안가면 안 돼? 대학은 왜 가야 하지?
아빠 : 대학에 안가도 되지? 대학 안가면 뭐 할 건데. 너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전까지는 그냥 사회에서 주어진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시간 나는대로 학교도 포기할 만큼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고민을 하길 바래! 아빠는 너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며 지원해 줄게.
규영 : 고마워! 이번 아빠와 마지막 자립 여행! 기대되는데.
 
“나는 과연 산티아고 800㎞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나는 무사히 대학입시를 통과할 수 있을까?”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대입시는 한국 청소년들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800㎞ 걸어서 대학교에 가는 것과 앉아서 공부하면서 대학교에 가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힘들다고 느끼게 될까? 정말 나 자신도 궁금했다. 아마도 산티아고를 걷게 되면 편안하게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낄 것 같고, 방 안에 앉아서 공부하다보면 산티아고를 걷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낄 것 같았다.

인간의 간사함과 우매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이쪽에 있으면 저 쪽이 더 좋아보기고, 저 쪽에 있으면 이쪽이 더 좋아 보이는 인생이다. 나는 파리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테제베 기차 안에서 창밖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과 들, 마을들을 보면서 저런 멋진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생각은 정말 허상과 우매함, 그 자체이었다는 것이 생장피드포르에서 걷기 시작하는 순간에 깨닫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하염없이 달려가는 고속버스와 기차, 심지어는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속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 걸음부터 시작하지 않고 어떻게 2,000리를 걸을 수 있겠는가? 승리의 여신은 노력을 사랑한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듯이 노력 없는 인생은 수치, 그 자체이다. 어제의 불가능성은 오늘의 가능성이 되며, 오늘의 불가능성은 내일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두 가지 길밖에 없는 성공 중에서 나는 타인의 어리석음을 선택하지 않고, 근면과 인내라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했다.

기적은 산티아고 길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과 발목에 통증이 오면서 나의 생각은 저 멀리서 자꾸 내 안으로 달려들었다.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자, 눈 앞 한 발자국 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쉬는 순간 배낭을 등에 맨 채로 쓰러지고, 눈마저 감아버렸다. 내 눈앞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내 안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의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나를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엄청난 유혹들이 많았다. 가장 큰 유혹은 유럽여행의 환상을 깨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시각각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싶고, 발에 오토바이를 달고 싶고, 배낭 속의 있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고, 배낭마저 버리고 싶고, 심지어는 내 몸마저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혹들을 이겨내면서 생각하는 힘이 생겼다. 주변의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힘들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면 우리의 생각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밖으로 도망간다. 생각이 밖으로 나가면 자꾸 주변에 유혹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하나는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서 ‘아! 정말 그렇구나!’하고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내리막을 만나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반가움 반! 걱정 반! 오르막 길에서는 힘은 들지만 정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내리막 길에서는 편안하지만 정상에서 내려가고 있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가장 편안한 길은 평지이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에서 항상 평지만을 기대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인생이 항상 평탄하지만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불구불 길을 힘들게 올라갔다가도 신나게 내려가는 곳이 있고, 또 낑낑 거리며 올라가는 것이 여행에 묘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깔딱깔딱 할 정도로 숨이 차서 깔딱 고개라 이름이 붙은 페르돈 고개를 넘으면서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하며 올라갔지만, 꾹 참아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정말 행복해진다. 힘들어 죽을 것 같으면 오직 한 걸음 앞만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짝쯤이야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한발 한발 묵묵히 걷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산티아고 전체 일정을 생각하며 걸으면 정말 괴롭다. 그냥 생각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그 순간만을 생각하면 새로운 힘과 희망이 돋는다.

빠른 속도로 춤을 추며 멀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뒤쳐져 산티아고를 걷는 내 모습에서, 모두 각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소수성에서도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위대한 작가들과 위대한 사상가들과 위대한 예술가들과 위대한 건축가들의 공통점은 여행을 떠나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산티아고 길을 오래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늘과 대지, 산과 숲, 들과 꽃, 마을과 사람을 내면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내 영혼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행하는 산티아고 길 위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며 나는 자립을 통해 미성년에서 굳건한 성년이 되어 갔다.
 
 
 
who?
외국인 환자유치를 통한 의료관광활성화를 통해 한국을 아시아의료관광허브로 만들어 세계 의료관광대국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차세대 관광시장의 비전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한국의료관광이 글로벌화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여러 단체와 의료관광 현장을 열심히 뛰고 있다.
(http://blog.naver.com/toury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