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67호]2016-12-26 08:52

[광화문 연가] 김문주 - 취재부 차장


“미안해, 사과할게, 나한테”
 
 
2016년 결산호 마감을 앞두고 있다. 이틀만 더 지나면 올해는 더 이상 취재를 나갈 일도, 사람을 만날 일도, 기사를 쓸 일도 없다. 12월이 마무리 되려면 한 주가 남아있지만 기자의 인생에서는 마감이 끝이자 시작이다. 967호 결산호 발행과 함께 2016년과는 작별이다.

입사 10년을 맞아 지난 9월 한 달 간 회사를 떠나있었다. 10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다보면 솔직히 관성이 붙어서 특별히 힘든 것도 특별히 좋은 것도 없이 그냥 다니게 된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싸워도 묵묵히 세상을 덮치는 시간 앞에서는 지는 법이다. 그나마 매주 신문을 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끊임없이 글과 사진을 남겨야 하는 업인지라 버틸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아침이면 습관처럼 확인하는 국제 뉴스도, 항공사의 신규 취항 정보도 상장여행사의 공시나 관광청의 행사 초대 메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방콕의 밤거리를 뛰어다니고 파타야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지고 한 낮의 맨해튼에서 툭 하면 잔디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렇게 인생 최대의 망중한을 보내면서도 궁금하기는 했다. 추석 상품은 잘 팔렸을까, A허니문 사는 안 망했나, 거절했던 그 팸투어를 가야 했었나 등등.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박물관 브로슈어를 모으고 여행지 사진을 각도 별로 찍고 관광객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나와 싸우고 있다.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

여행업계는 힘들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처럼 화려하지 않다. 해외출장과 대형 호텔에서의 번듯한 식사 그리고 수 많은 미팅들이 전부가 아니다. 시장의 잦은 변화와 소비자의 변덕 그리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갑을 구조와 폐쇄적인 운영은 업무 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어느 덧 직접 일을 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치, 다른 사람의 반응만 생각한다. 수시로 여행을 접하고 가장 많은 여행 상품을 팔지만 정작 여행을 정말 모르는 사람은 고객이 아닌 우리일지도 모른다.

한 해가 끝나간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시 1월 설 상품을 팔고 3월 이후 하계 성수기를 준비하고 전세기를 띄우고 출장을 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의 끝, 다른 사람의 눈치나 회사의 거창한 목표에 휘둘리기 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화해하며 치유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우린 어차피 내년에도 무교동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