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61호]2016-11-14 09:49

[Best Traveler(223)] 정태남-건축가





“여행은 내가 배운 것을 확인하는 짜릿한 경험”
 
호기심과 배움의 열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다

건축가이자 작가이며 여행자인 다채로운 삶
 
 

여행업 전문지로는 최초의 건축가 인터뷰가 아닐까. 그의 첫 인상은 꽤나 독특했다. 이탈리아 대사관 주최의 한 행사장에서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현장을 다녔지만 관광청 관계자가 아닌 이상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한국인을 본 적 없었던 탓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다. ‘뭐 하는 사람일까’ 은근슬쩍 염탐하는데 동료 기자가 어찌 알아챘는지 커리어를 줄줄 읊으며 찬양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건축가이자 이탈리아 전문가였다.

이탈리아에서 30년 동안 건축가로 활동하며 전 유럽의 건축뿐만 아니라 역사,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 측면에 상당한 지식을 쌓은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쌓은 지식들을 글로 정리해 책으로 펴내고, 말로 풀어서 강연을 하는 교육인 이기도 했다.

‘전문가’라는 수식어는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30년간 남다른 애정과 배움의 열정으로 유럽에 대한 지식을 무려 11권의 책으로 정리했다면 충분히 유럽 전문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건축가로 시작해 유럽 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는 정태남 씨를 만나봤다.
글·사진=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이탈리아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가장학생 자격으로 이탈리아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됐다. 일종의 연구과정으로 처음 계획은 2년이었다. 목적은 공부였지만 평소 새로운 문화를 좋아하던 내게 이탈리아라는 도시는 그저 신나는 여행지였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웠다.

연구과정이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 현지 친구들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행 대신 로마대학으로의 진학을 택했고 그것이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의 대학과정은 우리와 다르다. 열 명이 들어가면 세 명 정도가 겨우 졸업할 정도로 교육과정도 길고 졸업도 까다롭다.

언어도 능숙하지 않은 내가 로마 대학의 수준 높은 과제들을 곧바로 따라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대학에 입학해 처음 받은 과제가 로마의 유적지에 가상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로마 역사를 모르면 아예 시작을 할 수가 없는 과제였다. 그렇게 첫 과제에서 좌절을 겪고 나니 졸업을 위해서라도 역사 공부는 해야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자 후에 책까지 내게 만든 첫 사건이었다.

한 과목에 3년을 투자하며 로마의 건축물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리하여 9년 만에 건축분야 학위를 취득하고 나니 현지에서 일할 기회도 늘어났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로마에서 다른 유럽국가의 건축가, 고고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른 유럽국가의 문화에 대한 시야도 넓힐 수 있었다.


 

 

-유럽의 음악과 미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무려 7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들었다.


▲언어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실제로 내가 공부한 언어는 15개 이상인데 그중에서 유럽 언어 7개 정도는 비교적 자주 쓰는 편이다. 언어습득이란 어느 정도 재능이 뒷받침 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다. 언어 몇 개를 기본적으로 하다보면 언어를 배우는 길이 보인다.

언어에도 비슷한 계열이 있다. 예를 들면 라틴계 언어, 게르만계 언어, 슬라브계 언어 등 비슷한 계통 언어는 금세 배울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면 독일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면 스칸디나비아 언어가 보이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배움에 매우 적극적인 것 같다. 언어뿐만 아니라 저술활동도 꾸준하던데.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가 아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다. 전 유럽을 다니면서 구석구석을 다 다녀보고 그만큼 별난 사람도 많이 만나다 보니 항상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냥 이야기로 끝내는 것보다 글로 정리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다.

사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뒤였다. 그 당시 나도 로마생활을 20년 정도 하고나서 ‘내가 사랑한 도시 로마’라는 책을 썼을 때였다. 마침 나도 ‘로마 역사에 대한 책을 한 번 써볼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먼저 나와서 대히트를 쳐버렸다. 뭔가 선수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 때부터 망설임 없이 책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약속한 것이 하나 있는데 1년에 책 한 권 쓰기다. 물론 최근에는 강연 준비로 바빠져서 제대로 하고 실천하고 있진 못하고 있다. (웃음)


-원래 직업이 건축가이지 않나. 본업만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해냈나.


▲살다보니까 본업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본업이 있고 거기에 매달리는데 나는 굳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때 국내 모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제안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다 거절했다. 왜 좋은 자리를 거절하느냐는 질문에 ‘매달리기 싫다’고 답했다.

출퇴근 하는 일은 안하고 싶다. 시간은 가능한 한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부의 간섭에 의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내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다 보니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여러 개가 생겼다. 틀에 얽매인 삶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건축가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건축가를 비롯해 작가에 강연도 하고 있고 또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고문으로 있으니 본업이라는 의미가 없다.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 수식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한국사회는 ‘~장’에 집착한다. 과장, 부장, 소장 같은. 하지만 나한텐 그런 게 맞지 않는다. 여행자라고 하든, 작가라고 하든, 건축가라고 하든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이름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을 대표하는 대표다.
 

-여행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책들을 많이 썼다. 혹시 지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건가. 아님 그냥 떠나는 것을 즐기는 건가.


▲둘 다 맞다. 내가 건축가라고 해서 여행할 때 꼭 건축물을 보는 건 아니다. 물론 건축가로서 건축을 경우는 많지만 꼭 그것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내가 쓴 책을 보면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이 많다. 이유는 단순히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무작정 떠나는 편이다. 음악의 현장, 음악의 역사가 있었던 곳을 찾아가 여행을 통해 내 지식의 깊이를 더 했다.

한마디로 여행을 통해 알아가는 것을 즐겼다고나 할까. 나는 여행으로 지식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여행은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에피소드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클래식 기타를 독학했다. 그런데 클래식 기타 악보를 보니까 전부다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어가 재미있어 보여서 스페인어를 또 독학했다. 기타를 치다보니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다. 특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에 빠졌다. 알함브라 궁전은 또 어떤 곳인가 궁금해지면서 스페인 여행을 꿈꾸게 되고, 결국 스페인으로 직접 떠나 현장을 보고 느끼며 희열을 느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형태로 지식을 넓히고 스스로 개척해 나갔던 것 같다.


 


 
-책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겠지만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다면. 그리고 최근 계획중인 책이 있는지.


▲가장 공을 들였던 책은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라는 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이 책이 쉽지 않은 내용일 것이다. 로마의 건축과 역사를 연결시켜보고 싶은 사람에게 좋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로마의 작은 유적지와 역사 이야기까지 모두 풀어서 설명했다.

비교적 쉽게 읽힐만한 책으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이라는 책이 있다. 이것도 엄청나게 대중적인 서적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이라는 책도 추천하고 싶다. 프라하, 비엔나,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네 개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도시가 각기 다른 나라의 수도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과거 합스부르크 왕조의 깃발아래 한 나라의 지붕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다. 따라서 다른 네 개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소개한다.

이외에 요즘 준비하는 책은 소설이다. 로마의 네로황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전개해 나가는 내용이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실제 로마의 역사와 현장들이 배경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강조하면서도 사실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끝으로 또 어떤 멋진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첫 인문학 콘서트를 시도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이나 예술의 전당 등 기관에서 강연을 했다면 이번에 진행되는 인문학 콘서트는 누구나 신청하면 들을 수 있는 ‘열린 강연’이다. 11월 24일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아르노 강변에 핀 르네상스의 꽃’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이것 말고도 앞으로는 저술 활동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던 1년에 책 한권씩 출판하자는 계획이 바쁜 일정 탓에 자꾸만 미뤄지고 있다. 내년에는 1년에 두, 세권씩 쓰는 한이 있어도 미뤄둔 저술활동을 다시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약력]


-서울대 자연대 졸업, 로마대학 건축대학에서 Dottore in Architettura 학위
-이탈리아 건축사, 작가
-이탈리아 기사 훈장
-(주)범건축, BAUM architects 임원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고문
-이탈리아 로마 스키아타렐라(Schiattarella) 건축디자인회사 고문
-KAIST, 예술의 전당, 리움, 인간개발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서 강연
-KBS, EBS, YTN 등 방송출연
-저서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로마 역사의 길을 걷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산책>,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