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15호]2007-06-22 11:06

현지취재(下) 라오스 비엔티안
달의 도시 비엔티안에 가다 잔잔한 메콩강의 흐름을 닮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수도 느긋하고 평화롭다. 보통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도라는 곳은 당연히 활기로 가득차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뭔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기분 좋게 깨뜨려 준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잔잔한 메콩강과 나른한 분위기 속에 서 있는 불교 사원들. 나무가 죽 늘어선 가로수 길 사이사이로 프랑스 풍 건축물들이 보인다. 의식의 차이가 분위기에도 반영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제의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시킨 우리와는 달리 어두운 역사의 잔재인 프랑스어 간판 등이 비엔티안에는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 중에서 가장 느리고 조용할 것 같은 이 곳, 유럽과 아시아를 적절히 조화시켜 놓은 듯한 비엔티안만의 풍경이다. 라오스의 명실상부한 수도인 비엔티안은 메콩 강변 해발 3백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오스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50만명 남짓의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 또한 라오 왕조의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는 옛 왕궁과 사원 및 유적지가 즐비하다. 라오 왕조의 전성기에는 비엔티안에만 80여개의 사원이 있었으나 태국의 침략으로 대다수가 파괴된 지금에는 20여개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원이 라오스인들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한때 출입이 통제되던 공산화 시기를 제외하고는 라오스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특히 산속 깊은 곳이 아닌 시내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어서 라오스인들은 사원을 자주 찾는다. 그 안에는 석불보다는 동불이 많으며, 불상은 물론 아이들의 머리도 함부로 쓰다듬으면 안 되니 주의할 것. 금빛으로 채색된 사원들이 한낮의 햇볕 아래서 마치 라오스의 상징처럼 빛나며 내가 지금 이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 준다. 비엔티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푸 광장과 메콩 강 사이의 지역에는 모닝마켓이 열린다. 라오스 실크와 함께 가지각색의 견직물과 은 세공품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인근에 레스토랑과 숙박 시설 등이 모여 있고, 게스트 하우스부터 5성급 호텔까지 다양하게 준비돼 있으니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건물 위치는 사원을 기준으로 기억해 두면 편리하다. 메콩강 위로 느릿느릿 노을이 진다.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불을 밝히고 맥주를 마시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붐빈다. 체코에서 제조기술을 배워왔다는 ‘라오 비어’는 우리 돈으로 한 캔에 약 800원 정도이다. 사람들 틈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메콩강 위로 지는 해를 감상한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한다. 편리한 시설을 두루 갖춘 리조트들과 세계의 수많은 관광지를 놔두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라오스를 찾는 것일까? 유럽을 포함한 각지의 다양한 여행자들이 왜 여기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끌어당기는가? 오늘날 미학으로까지 불리는 ‘느림’을 직접 살고 있는 라오스인들. 이 소박한 사람들 속에서 긴장을 풀고 터덜터덜 걷기만 해도 나 역시 이 풍경 속으로 그대로 동화되어 버릴 것 같은 평화로운 느낌. 아마도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라오스=서남영 기자 titnews@chol.com 취재협조=베트남항공 한국지사 02)757-8921. www.vietnamairlin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