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43호]2016-06-27 09:16

[르포] 노량진 수산시장
 
 
‘세계 관광명소’를 꿈꾸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재는?
 
 
외래객 맞는 부실한 하드웨어 개선돼야

‘전통’과 ‘글로벌’ 모두 잃을까 노심초사

 
노량진수산시장은 역사적 가치는 물론 관광명소로 갖는 매력 또한 확실하다. 내국인들에게는 서울에서 신선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장소이며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시장, 그것도 수산시장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해 미국 미식 사이트 ‘데일리밀’은 노량진수산시장을 세계 3대 음식시장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에 노량진수산시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보케리아 시장’과 영국 런던의 ‘장미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쁨을 안았다.

최근 노량진수산시장은 변화와 도약의 중심에 섰다. ‘현대화’를 통해 ‘글로벌 관광명소’, ‘세계 피쉬마켓’으로의 부상을 꿈꾸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 건물이 지난 3월 16일 공식 개장한 것. 현대화 건물은 백화점식 수산시장을 모티브로 ‘제2의 도약’을 그렸다. 그러나 원대했던 포부와는 달리 현대화 건물의 등장은 안타깝게도 노량진수산시장의 분열을 초래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이라는 이름아래 기존 시장을 여전히 운영 중인 구(舊) 시장과 현대화 시장의 힘겨루기를 초래한 형국이 됐다.

현대화 건물 운영 3개월째를 맞은 6월 중순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했다. 지극히 관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노량진수산시장은 특유의 매력과 정체성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컸다.
노량진=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노량진수산시장 탐방기”
 
노량진수산시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쉽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하차하거나 버스를 이용해 노량진역 정류장에서 내려 구름다리를 통해 시장으로 이동하면 된다. 지하철역 1번 출구와 연결된 구름다리는 직진코스인 덕에 아무리 길치라고 해도 길을 잃을 수 없다. 되돌아가거나 시장으로 가거나 길은 딱 두 가지다.

구름다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선 후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구(舊) 노량진수산시장이 주홍 불빛을 내뿜으며 방문객들을 맞는다. 초여름인 탓에 수산시장의 비린내는 코끝을 더 강렬하게 진동시킨다. 바닷가 선착장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미간이 찌푸려지다가도 싱싱한 활어와 다양한 조개 및 갑각류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노량진수산시장은 활어, 선어, 냉동 해산물, 조개류, 갑각류, 건어물 등 370여 종의 해산물이 거래된다. 2013년 말 기준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1일 평균 이용인원은 약 3만 명으로 1일 출입차량은 5천여 대를 기록했다. 입이 떡-하고 놀라 다물어지지 않을 규모다. 연간 수산물 상장물량은 8만 9,121톤으로 연간 상장금액은 3,446억 1,800만 원으로 잠정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자리한 노량진수산시장은 내륙지 최대의 수산물 도매시장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1927년 서울역 근처 서대문구 의주로에 ‘경성부 수산물 중앙도매시장’으로 개장됐다. 광복 이후인 1947년 4월 ‘서울수산시장주식회사’로 명칭을 변경해 ‘서울특별시 수산물도매시장 대행기관’으로 영업을 계속해오다가 현재 위치인 동작구 노량진동에 1971년 5월에 정부 재투자기관인 한국냉장(주)에서 ADB차관으로 도매시장을 건설하게 됐다. 1975년 4월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3층 계단을 모두 내려와서야 마주하는 구(舊) 시장은 비린내와 펄떨펄떡 뛰는 해산물, 가격흥정에 들어서는 시장상인들의 소리가 어울리며 시장에 당도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시장 전체가 주홍빛으로 물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장터 앞 라인을 제외하면 듬성듬성 문을 닫은 곳들도 볼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현대화 건물로 터전을 옮겼고 현대화 건물 입점을 반대하는 상인들만이 구(舊) 시장에 남아있다. 구(舊) 시장을 벗어나면 현대화 건물이 자리한다.

연면적 11만 8,346㎡의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연회색 건물이 바로 현대화 건물이다. 현대화 건물은 1971년부터 43년간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보물창고였던 냉동창고가 있던 곳이다. 숨을 턱하게 만들었던 비린내의 원인이었던 수산물 가공처리장과 제빙실, 냉동창고는 지하 1,2층에 위치한다. 1층의 A, B, E, F구역은 경매장으로 C, D, G, H 구간은 패류, 활어, 냉동, 선어, 기타 해산물들을 판매하는 소매장으로 역할 수행 중이다. 2층은 식당과 홍보관, 건어물 판매장 등으로 나뉘며 3층 전층과 4층 일부는 주차장으로 한 번에 1,160대의 차량 주차가 가능하다. 5, 6층은 중도매인 및 수협노량진수산(주)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다.
 
 
 



 
“수산시장보단 대형마트 수산코너”

 
백화점식 수산시장으로 탈바꿈하겠다던 계획은 일부 성공했다. 현대화 건물에 들어서며 기자는 “대형마트 수산코너 같은데”라는 느낌을 우선 받았다. 구(舊) 수산시장이 떠안고 있는 청결과 냄새 문제는 해소됐다. 비린내가 진동했던 구(舊) 시장에 비해 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길에 웅덩이가 있지 않아 해산물 한 번, 바닥 한 번 흘깃거려야 했던 불편함은 덜 수 있었다.

현대화 건물 내부는 구(舊) 시장에 비해 화사하다. 벽면은 화이트톤으로 바닥은 연주홍의 고무재질로 디자인됐다. 수산시장인 탓에 바닥에는 항시 물이 흥건할 수밖에 없는데 고무바닥이 미끄러움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이다. 벽면과 맞닿는 바닥에는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수챗구멍을 만들었다. 현대화 건물에 입점한 시장 상인들은 빨간색과 분홍색의 앞치마와 장화를 장착하고 방문객들을 맞았다.

노량진수산시장은 현대화를 통해 한국 수산물유통시장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감과 동시에 한류의 기세를 몰아 관광지로도 부상하고자 한다. 90년의 전통은 이어가되 시설과 서비스는 현대화를 꾀하겠다며 내걸은 것은 단순히 현대화 건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정상원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 사장은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호객행위를 없애고 수산물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는 행위, 통일된 앞치마와 봉투를 사용하는 청결한 문화 정착 또한 새롭게 변화되는 부분임을 강조했다.

 


시장 상인들의 과도한 호객행위는 소비자(또는 관광객)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기자가 구(舊)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상인들의 호객행위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상인들이 밀집된 지역은 우회로 돌아가거나 큰 심호흡을 한 번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현대화 건물에도 해산물을 판매하려는 상인들의 모습은 볼 수 있다. 다만 구(舊) 시장과 비교해서 과도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소 점잖은(?) 시장상인들의 모습이 시장보단 대형마트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들게 한 대목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현대화 건물은 자동화시스템과 정보기술을 통한 첨단 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입점한 시장상인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보다 80% 이상 높아진 임대료 탓에 현대화 건물에 입점한 업체는 많지 않다. 개장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부가 휑했다. 활어, 갑각류 일부 코너만이 활기를 띠었다. 1층은 면적대비 25%가량만이 시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2층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식당가와 건어물 가게들이 들어서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었다. 최근 개장한 건물이라기 보단 곧 폐장될 건물처럼 텅 비었다. 식당가는 그나마 체면치레 했으나 건어물 코너는 자못 심각했다. 입점 업체가 고작 2개 상가로 공터와 회색 셔터가 사람들의 발길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서비스는 없고 말 뿐인 ‘글로벌’”

 
노량진수산시장이 현대화를 외친 이유에는 외래객을 유입해 글로벌 관광명소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담겨있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수현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여자 주인공인 전지현에게 개불을 사주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한류의 중심에 노량진수산시장이 자리했다.

정 사장은 한류의 기세를 몰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 또한 노량진수산시장을 주변 거점인 여의도, 노들섬, 용산 등을 묶어 서울시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고 구상안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을 여행한 전 세계 외래객은 약 1,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방한기간 중 가장 만족했던 활동은 무엇이었을까. 한국관광공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외래객들은 한국 방문기간 중 가장 좋았던 활동으로 ‘쇼핑(28.0%)’을 꼽았다. 이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식도락 관광’이 13.7%로 한국여행 중 두 번째로 좋았던 활동으로 선정됐다. 이는 2014년 대비 3.6%p 상승한 수치다. 반면 쇼핑은 2014년 대비 6.4%p 하락했다. ‘식도락 관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지역은 △일본(20.0%) △타이완(19.5%) △홍콩(19.2%)으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즉 노량진수산시장은 외래객들의 니즈가 부합되는 장소다. 그러나 기자가 다녀온 노량진수산시장은 구(舊) 시장도 현대화 건물도 외래객을 맞기에는 하드웨어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상당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구름다리에는 시장의 초입을 알리는 배너가 놓여있는데 외래객들에게 가장 친절한 현수막이라는 사실이 ‘글로벌’을 꿈꾸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주소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함께 게재해 놓은 이 현수막을 제외하면 외래객을 위한 언어 서비스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시장상인들과 계약을 맺어 운영되는 식당들 또한 마찬가지. 그나마 중국어가 가능한 종업원들이 서빙을 보는 곳이 많았지만 영어나 일본어는 불가한 모습이었다. 해외의 경우 외국어로 제작된 메뉴가 없더라도 그림메뉴로 외래객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곳들이 많다.

구(舊) 시장이 언제까지 운영이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나 화장실과 청결 문제는 해결이 시급해 보인다. 사실 현대화 건물보다는 구(舊) 시장을 찾는 외래객들이 더 많았다. 한국식 전통시장을 느끼고 싶은 외래객들에게는 최신식 시설로 바뀐 현대화 건물보다는 구(舊) 시장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