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35호]2016-04-22 14:20

[Best Traveler(199)] 문광수 모터바이크 세계여행가
 
 
 
노년의 익스트림 라이프, “불가능은 없다”
 
72세에 모터바이크를 타고 세계를 유람하다

30년 회사생활 은퇴 후 3개월 간 유라시아 횡단
 
 
우리가 기대하는 노년의 삶은 대체로 적막하고 평화롭다. 그저 남은 인생을 헤아리며 소소하고 여유로운, 어쩌면 따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어느 누가 자신의 칠십대를 상상하며 ‘모험’을 꿈꿀 수 있을까. 그래서 문광수 씨의 여행 이야기는 놀랍고 새롭고 자극적이었다.

30년간 대기업 임원으로 종사한 그는 은퇴 이후 남들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삶 대신 30년 전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환갑에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했고 칠십대에 세계여행을 준비했다.

72살에 시작한 어쩌면 무모한 도전, 모터바이크 세계여행. 그의 말마따나 나이 칠십이면 바이크를 타던 사람들도 그만둔다는데 그는 육십 여덟에 바이크를 배우고 면허를 땄다. 살아생전 처음가보는 외국의 땅, 낯선 도로와 사람들, 모든 상황들이 생경했을 테다.

하지만 나이에 갇히지 않은 그는 누구보다 자유로웠으며 낭만을 즐겼다. 마침내 그는 무사히 3개월간의 유라시아 횡단을 마쳤다. ‘젊은이’들의 선입견을 깨부수고 ‘늙은이’들의 편견 또한 찢어낸 문광수 씨와의 인터뷰는 강렬했던 이야기만큼이나 진한 여운을 남겼다.

자료참고=문광수 블로그(http://blog.naver.com/moonks4) | 글·사진=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오토바이 여행의 특성은 자연 친화적 야생이다. 험로나,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자연을 느끼고 사색하는 것.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것은 수단이 아니라 여행의 본질이다. 자연은 아름답고 푸근한 어머니의 품과 같다. 나는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유럽의 아름다운 길, 익스트림 로드 5개를 선정하여 질주했다.”

<출처>문광수 블로그 ‘유라시아 횡단’ 중.
 

 
-어떤 계기로 모터바이크 여행을 하게 됐나. 그리고 왜 하필 모터바이크인가.
▲30년간 대기업에 종사하며 매일 아침 빳빳하게 다린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출근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다가 은퇴를 하고 나니 문득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틀에 박힌 하루하루를 보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 세계여행은 은퇴 이후 처음으로 도전했던 것이 아니다. 여행 이전에는 ‘클라이밍(암벽등반)’이 있었다. 은퇴 이후의 무기력한 삶이 싫어 배우고 싶었던 스포츠에 도전하기로 했다. 환갑을 기념해 남들 다 하는 잔치 대신 클라이밍을 배웠다. 당시 클라이밍을 정말 열심히 했다. 환갑에 입문했지만 우리나라 클라이밍 일인자인 박준규 클라이머에게 5년간 가르침을 받아 본인도 자칭 클라이밍 일인자가 됐다.

스스로를 일인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위인 설악산 적벽의 암벽등반 루트 중 하나를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7일에 만들어서 루트 이름도 ‘777’이다. 적벽에 길을 내고 나니까 클라이머들이 인정을 해줬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등산학교인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의 교장으로 추대를 받았다. 그 때 나이가 65세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해 이뤄낸 성과가 세계여행을 다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렇다. 하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나름대로 만족할 만큼의 위치에 오르고 나니 칠십 대에도 무언가 해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꿈꿔오던 세계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것도 바이크로 말이다. 왜 하필 바이크 여행이었냐고 묻는다면 바이크가 가장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이크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아웃도어 아닌가. 바이크 여행은 길이 험하면 험한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먼지 다 덮어쓰면서 자연에 몸을 던지는 행위다.

자연에 순화하는 의미에서 바이크로 전 지구촌을 한 바퀴 돌겠다고 생각해 육십 팔세에 바이크를 처음으로 배웠다. 바이크를 타던 사람들도 그만두는 나이에 나는 면허를 따고 세계일주를 준비했다. 여행 자료를 수집하고 오토바이도 열심히 연습했다. 마침내 72세에 세계여행을 떠났다. 3개월 동안 2만 킬로를 달렸다.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스칸디나비아반도를 한 바퀴 돌아서 유럽 16개국을 지그재그로 찍고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뒤늦게 떠난 여행이다. 그래서 깨달은 점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철이 들었다.(웃음) 나이가 들어서 철들었다고 하니 웃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행을 하게 되면서 가족도 떠나고, 집도 떠나고 오로지 혼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다 보니 덕분에 가족도 생각하고 조상도 생각하면서 나를 깨닫게 됐다. 건방지게 자기완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여행을 통해 뒤를 돌아보고 반성도 하는 자아발견의 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 때 많이 하게 됐다.
 


“잔 파울로 씨는 88서울올림픽 프랑스 복식대표 금메달리스트라고 한다. 27년이 지나 그는 노인이 되어 조그마한 호텔의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우리를 각별하게 대해 주었다 인생이 무상함을 느낀다.”

<출처>문광수 블로그
‘알피니스트의 고향 샤모니 몽블랑’ 중.
 
 

-이미 수없이 들었을 질문일 것 같다. 여행이 힘들진 않았나?
▲엄청 힘들었다. 버스타고 다니는 여행도 힘든 나이인데 내가 한 여행은 계속해서 100킬로, 120킬로를 달려야하는 바이크 여행이었다. 매일 그렇게 긴장하다보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가 상쇄되고 그래서 3개월 간의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너무나 힘들었다.

나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에는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만큼 많이 물어보는 것이 있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것. 꼭 바이크라고 하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제일 먼저 물어본다. 그러면 ‘70세가 넘은 바이크 초보자가 3개월 간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생전 처음 가보는 험로를 골라서 다녀서 살아왔으니까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묻고 싶다. 위험하다는 것은 선입견이다.
 

-바이크 여행에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당연하다. 바이크 문화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우리나라는 바이크 문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매일같이 매스컴에 오르는 바이크 소식은 주로 과속으로 인한 사고나 날치기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 시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이크라고 하면 사고, 굉음 등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바이크만의 자유와 낭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 여행이라 함은 무조건 혼자 하는 것이라고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 바이커의 80~90%는 부인을 태우고 여유 있는 여행을 한다. 바이크 여행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긍정적인 바이크 문화를 선도해서 우리도 그런 바이크 여행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특별한 여행을 했다. 여행을 다니며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여행을 통해 여태까지 내가 너무 건방지게 살았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뭐랄까,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경영자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하면 되지 안 되는 게 어디있냐’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랬기 때문에 매사 열심히 했고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자부심도 있었다.

솔직히 조금 처진 사람들을 보면서 ‘왜 바보같이 저렇게 무기력하게 살까’라고 무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모든 게 다 자신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오만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정말 겸손하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에 그 사람은 뒤처져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 기준에는 내가 불쌍할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 같이 생활수준이 어려운 곳에 사는 사람의 행복이 내 행복보다 가치 있을 수 있고 더 진정한 삶일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것이 부끄러웠다.
 


 
 
-여행을 계획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이들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떠나라. 나는 3개월간 여행하면서 예약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정해진 일정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확약도 없이 떠나서 현장에서 부딪히고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떠났다. 여행가기 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것, 물론 그 방법도 나쁘진 않지만 배낭을 메고 떠나는 젊은이들은 그럴 필요 없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라. 세상은 이웃과 같은 곳이다.
 

-60~70대 노인들도 자유여행을 많이 떠나고 있다. 경험자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모두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해보임으로서 다른 노인들의 꿈과 용기를 북돋우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본인 또한 대한노인회 홍보대사로서 대한민국 노인의 기량을 유럽에 당당히 펼쳤다. 노인이라고 해서 무기력하게 젊은이들에게 짐만 지우고 있을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제2의 인생을 만들어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