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35호]2016-04-22 13:56

[김정민] 서울시청 대변인실 언론담당관(언론홍보담당), 전 마더뮤직 공동 창업자
 
 
“여행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잖아요?”
 
 
예술, 문화, 음악, 나눔, 배움이 함께하는 다목적 여행의 고수

소외 계층 아이들과 웃고 즐기는 여행 수업, 지속하고 싶어

외국인 친구 오면 인사동 말고 서울 숲, 혁신 센터 데려갈 것
 
 
19주년 창간 특집호 제작을 앞두고 그간의 인터뷰 기사와는 조금 색다른 스토리를 발굴하자는 취지 아래 섭외 전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특정한 업계 인사가 아닐 것. 이미 나왔던 사람들은 제외할 것. 달라진 시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현재진행형의 여행자를 모실 것 등이 그 예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고심 끝에 만난 두 명의 인터뷰이(interviewe)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하기 힘든 흥미로운 대화와 경험담으로 기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한 명은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체험형 FIT의 끝장판으로 예술, 문화, 배움이 함께하는 해외여행을 즐기는 스페셜리스트다.

또 다른 이는 실버 여행층의 대표 주자로써 젊은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모터바이크 여행에 서슴없이 몸을 던질 줄 아는 진정한 청춘이다.
 
 
 
“본능적으로 대박의 냄새가 난다”
 

이 여자 수상하다. 태국 여행 중 현지 의류 매장에서 기성복도 아닌 무려 맞춤 정장 한 벌을 남편한테 사입히고 베트남에서는 남들 다 가는 관광지 대신 현지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들을 순회하며 비즈니스 일정을 소화했단다. 뉴욕에서는 무료 음악 공연과 전시회에 흠뻑 빠져 관광지 순회는 가볍게 패스하고 국내 여행 중에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음악과 춤이 있는 공연무대까지 펼쳤다.

기자 밥 10년 째, 본능적으로 가슴팍이 꿈틀거리며 감이 왔다. ‘이건 된다!’ 요즘 같이 무섭고 냉정한 세상에서 온라인의 인연을 오프라인까지 확장하는 것은 사실상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낚시꾼이 대어를 코앞에 두고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낚싯대를 거둘 수는 없는 노릇. 오랜 기간 페이스북 친구로만 알며 간간히 소통했던 그녀의 담벼락에 무턱대고 글부터 남겼다. “저랑도 밥 먹어요!”

글·사진=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김정민 씨는 서울에서 일한다. 여기서 서울은 위치나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현재 서울시청 대변인실 소속이다. 언론담당관으로 일하며 언론 홍보 및 SNS 홍보 등이 주요 업무다. 언뜻 보면 소위 말하는 ‘철밥통’으로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은 단순치 않다. 예고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서울예술대학에서 디지털 아트를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곧바로 대형 가수들의 공연 영상을 제작하는 직업을 가졌다.

특이한 이력은 이 뿐만이 아니다. 책을 실컷 읽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소망아래 출판사 <문학동네>에 몸담았고 TBS교통방송 PD로 프로그램 기획 및 연출에도 나섰다. 2012년 서울시청 뉴미디어 담당관을 거쳐 마지막에는 비영리기관인 동그라미 재단(구 안철수 재단)에서 대외홍보까지, 남들은 하나 갖기도 힘든 직업을 몇 개나 섭렵한 셈이다.
 

-프로필이 정말 다양해요. 전부 계획하고 움직였던 건가요?
▲제 친구들도 같은 말해요. 불경기에 원하는 일자리만 꼭꼭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진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놀리죠.(웃음) 저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예고 나오고 예대 나왔다는 이유로 저를 약간 금수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대학 때부터 용돈 받지 않고 집안 도움 안 받고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공모전 수상 등 노력을 통한 보상도 많았고요.

사람들은 예술을 조금 막연하게 그리고 나하고는 먼 개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술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나눔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재단 일도 그 중 하나였고요. 여행도 상당히 좋은 분야죠. 낯선 여행을 통해 배우고 아이디어를 얻는 경험이 좋았어요.
 

-여행을 상당히 많이 다니는 것 같아요. 원래 좋아했나요? 생애 첫 여행은 어땠어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갔던 게 중학교 때였어요. 당시 학교에서 걸스카우트였는데 단체로 오키나와를 갔거든요. 지도를 보고 직접 길을 찾고 친구들과 여행지에 대해 논의했었는데 그 때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저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경험도 없어요.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성인이 된 이후에요. 제 발품 팔아서 열심히 다녔죠. 하지만 어릴 때의 그 경험이 제 삶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 준 것은 맞아요.

남이 해보지 않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다, 혹은 내가 사는 이 곳과 대도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거든요. 허투루 여행을 다니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특별한 경험을 하고 현지에서 좋아하는 것들만 누리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죠. 여행 횟수는 많지 않아요. 도쿄, 마카오, 홍콩, 필리핀, 호주, 태국, 베트남, 뉴욕, 베를린, 런던 등을 다녀왔어요. 허니문으로는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LA를 방문했고요.

 
-신기하게도 일반적인 관광이나 휴양 형태의 여행은 못 본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쉬는 건 서울에서 이틀만 가만히 있으면 돼요. (웃음) 스트레스도 잘 안 받는 체질이고요. 남편이 싱어송라이터(김철연)인데 저나 남편이나 좋아하는 키워드 그러니까 취향이 좀 확실한 편이죠. 그게 약간 무서울 수도 있는데 어떤 여행지를 가든 자유롭게 원하는 것만 하면 되니까 관광지를 보거나 랜드마크를 찾는 게 생각보다 재미없더라고요. 저희는 현지 음악 및 공연 보는 거 제일로 좋아하고 미술품이나 전시회도 사전에 검색해서 보러 다녀요.

실제로 좋아하는 일본의 뮤지션을 보고 싶어서 그가 공연했던 장소를 역추적 한 다음에 더 좋은 공연을 본 적도 있고요. 명품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는 사람, 단순히 리조트에서 쉬고 싶은 사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 등 여행에 있어 개인의 우선순위가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사회 재단에서 일했던 경험이 궁금해요. 사회 재단에서 일하면서 나눔 사업에 대해 더 확고한 비전을 가졌나요?
▲동그라미 재단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 재산의 반을 사회에 환원해 만든 비영리재단이예요. 온오프라인 홍보 및 대외 협력 등 업무 영역은 비슷했는데 이때 일하면서 좀 더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됐어요. 재단에서 펼치는 교육사업은 물론 지역 소재 작은 기업 후원, 지속적인 봉사 활동 등 스스로도 재밌어서 엄청 신나게 일했죠. 이 때 좋은 파트너들도 많이 만났고요.

일하면서 제 역작이라고 자신하는 것 중 하나가 네트워킹 행사였어요. 초반에는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조용히 밥만 먹고 서로 낯설어 했거든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돼 있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일 하기 힘들잖아요. 거의 뒷조사 수준으로 파트너들이 좋아하는 즐길거리를 찾고 콘텐츠도 마련해서 나중에는 다 같이 웃고 떠들며 즐겼어요.
 

-그런데 왜 일을 관뒀나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은 다른 재단에 비해 업무 환경은 괜찮았을 것 같은데.
▲마더뮤직을 키우고 싶었어요. 마더뮤직은 2013년 서울시 서울혁신기획관, 공유허브, 오이씨가 함께한 <공유경제 시작학교>가 출발점이었고요. 남편과 제가 갖고 있는 음악적인 재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만난 프로젝트였죠. 직장인 대상 어쿠스틱 기타교실이 대표적이고요.

이 밖에도 평소 경제적 부담으로 쉽게 취미생활을 갖지 못하는 젊은 연극인들을 위한 클래스도 마련했어요. 특히 젊은 연극인들과 후원자를 1대1로 연결해 지속적인 양성을 돕는 후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마더뮤직은 이름 그대로 엄마가 줄 수 있는 음악 뭐 그런 뜻이예요. 배고프고 힘들 때 엄마가 차려준 밥상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몸의 허기를 채우는 엄마의 밥처럼 정신을 채우는 엄마의 음악, 뭐 그런 의미죠.(웃음)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여행학교’를 진행한 적 있죠? 그걸 보면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여행학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개설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일환이었어요. 저보다 남편이 먼저 섭외됐죠. 음악 하는 사람이고 나름 인지도가 있으니까 아이들한테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여기에 재단이 추가로 원했던 것이 순수하게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닐 사람이었는데 적임자가 없어서 제가 운 좋게 동참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서울시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이후 범위가 확장됐던 거죠. 지방에 사는 사람들한테 서울은 정말 미지의 존재예요. 방문 경험이 곧 빈부의 격차를 의미하죠. 그냥 단순하게 ‘서울이 어떻다’ 식의 팩트를 전달하기 보다는 과거 역사부터 시작해 현재 자치구의 유래 등 스토리텔링을 잘해서 설명했더니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저한테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어요.


 

 
-여행업계도 나눔에 대해 관심이 많고 최근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행을 통한 봉사가 인기를 끌고 있거든요.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볼런투어나 공정여행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고요. 여행과 나눔을 어떻게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거 아세요? 사실 정말 소외 계층이면 차라리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복지가 필요한 계층으로 편입되는 거죠. 부유한 아이들은 뭐 말할 것 없이 알아서 잘 누리고요. 저는 오히려 중간에 평범한 아이들한테 이런 여행 경험이나 나눔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예요.

여행 학교 할때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어른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까. 같이 여행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그제야 자기의 꿈을 얘기하고 그동안의 상처를 풀어놓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저는 여행이 좋은 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해외를 가서 혹은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어서 좋다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 답하고, 일상 중에는 그럴 시간이 없잖아요.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라면 더하겠죠.

저는 여행사가 여행을 통한 나눔이나 공유에 힘을 쏟는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볼런투어나 공정여행은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으로 보면 가격으로써의 메리트가 약하고요.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과 어디를 ‘갔다 왔다’는 형식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의 내면을 좀 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행에도 빠삭하고 도시에 대한 경험도 많고. 만약 외국인 친구들이 서울에 온다면 어디를 보여주고 싶나요?

▲우선 저희 집이요.(웃음) 진짜 잘 할 수 있어요. 인사동이나 명동은 안가겠죠. 제가 외국인이라면 재미없을 것 같거든요. 기본적으로 서울에 대해 소개하려면 시청이 좋을 것 같고요. 서울숲도 색다른 매력이 있죠. 여기에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혁신센터에서도 다양한 정보 수집과 네트워킹이 가능해요.

제가 태국과 베트남에 갔을때 거기서 스타트업 업체들 많이 만나고 코워킹 기업(coworkingspace)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비즈니스 센터도 가고 했거든요. 이게 재미 없을 것 같이 들리겠지만 동남아시아는 아직 경제개발도상국이고 그렇다 보니 스타트업 같은 신사업도 특정한 부유층이 주도하고 있어요. 상당히 재밌는 모델이죠.

아, 그리고 서울에 정말 좋은 책방들이 많아요. 대형서점도 좋고 중고서점도 좋고 작은 동네 서점도 그만의 맛이 있죠.
 

-앞으로도 이렇게 정말 남다른 여행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혹시 다른 꿈은요?
▲여행지로 다른 도시를 방문했을 때 지금처럼 관광보다는 전체적인 도시의 기능과 시스템을 먼저 확인하는 버릇을 고집하고 싶어요. 그리고 역량은 부족하지만 여행을 통한 나눔은 최고의 화두니까 여행 수업 꾸준히 계속하려고요. 그간의 수업 경험이나 후일담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일도 서서히 준비 중이예요.

무엇을 하고 싶거나 어떻게 살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사실 없어요. 저는 그냥 제가 예전부터 해왔던 예술과 사회적 가치의 혼합 그리고 여행을 통한 탐구와 인재 양성 등을 즐겁게 풀어나가고 싶어요. 여기에 남한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고요. 오늘 이자리도 그런 의미에서 너무 즐겁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