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11호]2015-10-23 10:12

신 관광명소 서촌? “길을 잃었다!”



거품 잔뜩 낀 서촌의 불투명한 미래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의 중심에 서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동네를 지칭한다. 통인동, 청운동,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 그리고 인왕산 동쪽을 한데 모아 부르는 말이 서촌이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다수의 사대부들이 살았던 북촌과는 달리 서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 서촌이라 불렀단 얘기도 있다. 즉 서민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서촌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전·중기에는 사상과 문학·예술의 중심지였으며 후기에는 중인들의 생활·문화의 거점지역이었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대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런가 하면 노천명, 박노수, 윤동주, 이상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가·음악가·화가 등이 서촌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

서촌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공통된 사항은 예술문화의 중심이면서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박한 동네라는 거다. 그런 동네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해버렸다. 서울 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로 불렸던 과거의 서촌은 개발과 함께 밀려난 듯하다. 기자의 시선에서 본 서촌은 상업화라는 과도기 속에서 거품만 잔뜩 머금은 ‘이도 저도 아닌’ 뜨내기 동네였다.

글·사진=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통인시장, 엽전도시락 콘텐츠가 무기”

서촌 탐방의 제1코스는 ‘통인시장’이다. 광화문 입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통인시장은 1941년 일제강점기 효자동 인근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을 위해 설립된 공설시장이 전신이다.

6.25 전쟁 이후 서촌지역 내 인구가 급증하면서 공설시장 주변으로 노점과 상점이 형성됐고 세월이 흐르며 현재의 통인시장 형태를 갖추게 됐다. 전체 75개의 점포 중 식당과 반찬가게 등 요식관련 점포가 주를 이룬다. 이밖에 내의와 신발 등 공산품과 옷, 가방, 구두 수선집 등이 일부 분포돼 있다.

광장시장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통인시장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시장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통인시장이 다른 재래시장들과는 달리 젊은이들을 매료시킨 요인이 뭘까. 답은 간단하다. 통인시장이 위치한 서촌이라는 시너지효과와 더불어 그들만의 콘텐츠다. 바로 엽전 도시락.

통인시장 상인회가 지난 2005년 인정시장(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시행규칙에 의해 정부가 인정한 시장을 의미함)으로 정식 등록한 이후 정부 보조금과 상인회비를 기반으로 아케이드 설치 등 쾌적한 시장 환경을 조성했다. 이후 2011년 통인커뮤니티주식회사를 설립해 △통합 콜센터 및 배송 △도시락 카페 △목공방 DIY 등을 주요 사업으로 통인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엽전도시락이 바로 통인커뮤니티주식회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고객안내센터 2층 도시락카페를 방문해 현금을 엽전으로 바꿔 사용하면 된다. 손에 들린 빈 도시락통을 들고 시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도시락카페 가맹점들을 찾아 엽전을 내고 음식을 사면된다.

엽전 판매는 오후 4시까지만 가능하며 이용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월요일과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은 휴일이다.

아쉬운 점은 도시락카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통인시장의 명물 엽전도시락을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곳도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않는다. 현금이 아닌 엽전으로 지불한다는 강점도 없다.

“엽전도시락 체험하고 싶으면 하든가”라는 느낌이다. 혜택도 없고 도시락카페 가맹점들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금을 더 반기는 모습이었다. 도시락카페 이용에 대한 정보 또한 표기돼 있지 않다. ‘도시락카페 가맹점’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은 상점들에 물어물어 통인시장의 명물 엽전도시락을 힘겹게 체험할 수 있다.

말이 통하는 내국인이기에 가능하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엽전도시락의 존재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일 듯하다.

통인시장의 인색한 부분들을 고치고 콘텐츠 활용도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통인시장 내 음식들은 전체적으로 저렴하고 양도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정보제공이 부족하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었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필요가 없다. 상인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엽전도시락 이용법을 홍보하고 관련 위치를 시장 내부에 표기하고 안내할 필요가 있다.
 
 


“이정표 없는 골목투어, 미로 찾기 방불케 해”

통인시장을 벗어나 서촌 골목투어에 본격 나섰다. 호기롭게 나섰으나 얼마 안 가 길을 잃었다. 서촌의 골목은 골목에서 또 골목으로 가지치기와 닮았다. 조금만 삐끗하면 가려던 곳과는 다른 곳에 발길이 멈춘다.

북촌이 조선시대 한옥을 보존한 한옥마을이라면 서촌은 1960~70년대 근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상업화되지 않은 흡사 시골 동네와도 같은 정겨운 모습. 통인시장에서 박노수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1960~70년대부터 운영하던 장소들을 마주칠 수 있다.

당시 내로라하는 서촌의 멋쟁이들이 다녀갔을 법한 이발소는 현재도 옛 방식을 고수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할아버지와 빨강, 파랑 줄이 돌아가는 이발소를 상징하는 통돌이만이 과거에 멈춰있다. 이발소에서 왼쪽으로 코너를 돌면 효자동의 터줏대감 20년 된 효자동 베이커리가 자리한다. 입구를 넘어 옆집과 차도까지 줄을 선 사람들이 이 빵가게의 인기를 증명한다.

그렇게 삐끗삐끗 같은 자리를 맴맴 돌다보면 여행의 묘미보단 정보제공의 인색함에 조금은 짜증이 난다. 통인시장을 빠져나와 박노수미술관과 대오서점을 방문하려던 기자는 몇 번이고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되돌아가는 일 또한 부지기수.

안내판이 있는 박노수미술관도 찾기 힘든데 표지판 없는 곳들이야 말해 입 아프다. 네이버 지도로 박노수미술관에서 대오서점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걸어서 단 5분. 서촌 지리를 몰라 헤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간 거주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 1종 등록미술관인 이곳은 박노수 화백이 기증한 작품과 고미술품, 수석, 고가구 등 총 1천여 점의 소장품이 보존돼 있다. 종로구는 이를 활용한 전시와 다양한 연계 예술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1차에 관람할 수 있는 인원은 15명으로 제한된다. 전시품 보존도 있지만 미술관 건물 자체에 대한 보존 차원에서다.

동 건물은 1937년 지어진 가옥으로 당시의 건축물도 살펴볼 수 있다. 관람료는 2,000원이며 실내 사진촬영은 불가하고 마당 사진만 촬영 가능하다.

‘대오서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이미 많은 매스컴에 오르내린 곳이다. DSLR카메라를 들고 대오서점과 그 일대를 포토존으로 사진 찍는 젊은이들의 필수코스다. 칠이 벗겨진 지붕 기와와 대오서점 간판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한다. 대오서점이라는 반듯한 붓글씨는 소박한 서촌을 닮았다. 대오서점은 1951년 문을 연 이래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대오서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대오서점은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에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치렀다. 지금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대신 차를 마시는 카페로 바뀌었다. 진열된 책들도 더는 판매하지 않는다.
 
 



“근대문화, 갤러리? 상업화로 중구난방”

의도치 않은 미로 찾기 속에서 보고 싶지 않던 서촌의 민낯이 드러났다. 북촌을 잇는 차세대 관광명소라는 타이틀은 거품이 잔뜩 끼었다. 새로운 명소로 뜬다는 얘기가 들리던 2011년, 그들이 전망한 서촌의 모습이 지금과 같았을까. 기자와 같이 서촌 또한 길을 잃은 모습이다. 서촌의 테마와 콘텐츠를 보존하고 개발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람들이 서촌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되짚어봐야 한다. 서촌의 매력은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다. 번화하지 않은 서울의 모습과 화려하거나 뽐내지 않지만 소소하게 문화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촌이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서촌은 2011년부터 상업화된 가게들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어느 골목은 그저 평범한 시골 동네와 같은데 모퉁이를 돌면 밀집된 카페들로 작은 홍대나 합정 카페거리에 있는 듯 했다. 서촌의 작은 갤러리숍들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현재까지 운영하거나 새롭게 갤러리숍을 오픈한 곳들은 규모가 나름 있는 곳들이다. 경제력이 바탕이 되지 않은 곳들은 카페나 음식점 등에 밀려난 셈이다.

북촌과 홍대가 가수라면 서촌은 그를 흉내 내는 모창인과 같다. 서촌의 매력을 고수하기 보단 ‘돈’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서촌과 홍대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특색을 잃어가는 동네라고나 할까. 홍대와 함께 서촌은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1964년 영국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루스 글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싸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임차인)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으로 의미가 넓어졌다. 임대료가 낮은 도심에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가 생기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서촌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됐다. KBS <추적60분>에 따르면 서촌 ‘옥인길’ 내 건물들이 주거지에서 상업용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자하문로의 외지인 건물주 비율이 30%에 육박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초기 증상을 보여주는 서촌이 자정의 노력을 통해 특색을 잃고 주민을 몰아낸 상업도시가 아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로 다시 돌아가길 기대한다.

 
 
 
<서촌 골목투어 Tip>

1. 대중교통 이용 시

△지하철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버스 : 171, 272, 606, 706
△시티투어버스 : 전통문화코스 이용, 운행시간 9:30~18:30(35분 간격 출발)

2. 서울시 추천 코스

△1코스 : 경복궁역-대림미술관-보안여관-경복궁아트홀
△2코스 : 경복궁역-대오서점-통인시장-자수궁터
△3코스 : 경복궁역-홍종문가옥-배화여고생활관-필운대
△4코스 : 마을버스승차장-서촌주거공간연구회-티벳박물관-수성동계곡
△5코스 : 경복궁역-팔레드서울-송석원터-경복궁역

3. 서울도보해설관광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 웹사이트인 Visit Seoul(http://m.visitseoul.net)에서 전문가가 동행해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주는 도보관광을 예약할 수 있다. [명소. 체험] 탭을 누르고 [추천 여행] 카테고리 중 [해설이 있는 도보관광]을 클릭하면 된다. 이후 [도보관광 예약]을 클릭하고 [전통 문화 중심지역] 카테고리 내 ‘서촌 한옥마을’을 예약하면 된다. 신청인원이 3인 이상부터 출발이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