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09호]2015-10-12 09:21

[취재수첩] [광화문 연가] 권초롱 - 취재부 기자




“상품 베끼기 두려워 홍보도 주춤하는 여행업계”
 
 
최근 한 여행사에서 신규 여행상품을 출시했다. 사실 신규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진정한 신상품을 찾기 어려운 상품군이 여행상품이다. 그런데 혹하는 신상품 출시 소식을 듣게 되니 기자의 직업정신 아닌 직업정신이 발휘됐다.

출입처 측에 먼저 기사로 작성하겠다고 한 것. 어느 여행사에서도 본 적 없는 상품을 업계 종사자와 여행정보신문을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었다. 또한 다양한 이유로 진정한 신규상품 출시를 꺼리는 여행업계에 그럼에도 남과는 다른 상품이 출시되고 있으니 신상품에 더욱 힘써주길 바라는 독려의 마음도 존재했다.

신상품을 출시한 해당 업체의 홍보팀 직원과의 미팅은 순조로웠고 재밌기까지 했다. 타사에선 본 적 없는 상품이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일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과 상품의 경쟁력, 자사의 전문적인 행사 핸들링까지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렇게 열심히 인터뷰하며 상품을 소개했던 홍보팀 직원은 며칠 후 기사화시키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기자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출입처와 미팅약속이 깨지는 것만큼이나 신상품이나 획기적인 기획전, 프로모션의 소식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요청 말이다. 햇병아리 기자신분이었을 때는 이런 요청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맥이 풀려 기분도 나빴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업계의 이러한 생리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더 짙어지고 만다.

홈페이지에는 해당 상품을 버젓이 올려놓고 판매활동을 펼치지만 드러내고 싶어 하진 않는 업계의 모습이 안타깝다. 때문에 앞선 사례처럼 기사화를 꺼리는 출입처 직원에게 “기사를 통해 해당 상품을 가장 먼저 출시한 업체임을 증명하라”고 도리어 말하기도 한다. 홍보팀 직원들의 답답한 속내를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나 자사 상품을 알리고 판매에 도움을 주는 홍보팀에서 하는 일들에 영업팀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한다고.

이유는 같다. “죽어라 아이디어 내놓고 실효성 따지며 내놓은 상품이나 기획전을 옆 회사가 포장지만 바꾸고 내용물을 똑같이 출시했기 때문”이다. 애꿎은 홍보팀에 화를 내기도 한다는 건데 홍보팀은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욕을 먹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연출된다.

상품 베끼기가 두려워 홍보를 주저하기 보단 이러한 업계의 관행을 깰 수 있는 업계 전체의 자정 노력과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