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25호]2007-08-31 16:14

[김태삼] 트레킹과 여행(30)
“정글 속, 축축함으로 기억되는 순수한 산 아포” 김태삼 (주)푸른여행사 대표 필리핀은 섬나라이다.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화산과 호수로 구성된 국가다. 그 중 이번 8월에 다녀온 아포산은 남단의 민다나오 섬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사실 8월은 우기인지라 이번 여행에 앞서 다소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어지간하면 “힘들다”란 말을 하지 않는 나로서도 저녁식사 후 야영지에서 텐트안에 몸을 뉘이면서 저절로 한숨과 “힘드네”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곤 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환승, 한 개의 도시로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다바오로 항공기를 이용해 움직였다. 인천에서부터 3시간30분, 마닐라에서 민다나오 다바오까지는 2시간 정도 총 여섯 시간이 넘게 되는 항공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근처의 한인식당에서 삼겹살과 ‘산 미구엘’이라는 필리핀의 유명한 맥주로 여행의 시작을 자축함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고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달게 잠을 청했다. 어제 일행들과의 반주가 조금은 과했는지 아침에 눈을 뜨는데 약간의 두통이 있다. 차량 두 대로 13명이 나누어 타고 아포산으로 출발했다. 해발 1,160m정도에 위치한 입산신고소에서 입산신고를 하고 카파타간이라는 화전민 마을을 거쳐 산에 오른다. 일반차가 오를수 없는 길이라 4륜구동의 트럭, 두 대를 수배했다. 이후 트럭으로 바꾸어 탔는데, 차후 아포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작은 트럭을 탑승할 때 엉덩이에 퍼런 멍이 들 각오는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 30분 남짓 탑승하고 가는데 비명과 즐거움의 괴성이 함께한다. 차량에서 하차 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우기라는 걸 미리 알고 떠난 여행이지만, 등산로는 진창이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심해져 발목까지 빠지는 구간도 많았다.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길인지라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해야 하는데 미끄럽고 진창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다. 첫날 구디구디라는 곳에 도착하여 밥과 국, 소주로 허기를 채우고 다음 날 산행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모닥불에서 늦게까지 젖은 신발을 말리느라 고즈넉이 앉아 있었는데 고된 가운데 모닥불과 별을 보니 마음의 평화가 오고 뭐라 표현 못할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등산로는 뻘에 가까운 진창이었고 산행의 둘째 날은 휴화산의 산인지라 유황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너덜바위지대가 나왔다. 약간의 급경사였으나 모두들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올랐다. 출발한지 3시간도 채 안되어 정상에 모두 오르니 등 뒤로 구름과 산군의 봉우리가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듯 서있었다. 정상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였다. 그 흔한 표지나 안내 따위는 전혀 없었고,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있어 기분이 가히 나쁘지 않았다. 아포산의 산행은 이렇게 2박3일의 일정이었으나 필리핀에서의 즐거운 일이 많이 있기에 다음에 1회 더 글을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