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76호]2015-01-23 14:28

[취재수첩] [광화문 연가] 강다영 - 취재부 기자
“불편한 세상, 본능적인 여행으로 도망치고 싶다”
 
 
글 시작부터 이런 말을 하게 돼 유감이지만, 기자는 화가 나있다. 땅콩회항에 이은 백화점 모녀의 영 언짢은 갑질 논란과 정신이상이 의심되는 안산 인질범 사건, 사랑으로 감싸야할 아이를 내동댕이친 인천의 악마 보육교사까지. 각종 사건사고와 죽음으로 점철됐던 악몽의 2014년이 지나간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순한 양의 해를 맞아 올해는 시작부터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상은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기자는 여전히 불편한 상태다.



언젠가부터 여행은 치료(주로 ‘힐링’으로 불린다)를 말할 때 자주 함께 쓰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갑갑한 최근의 현실은 정신치료를 핑계로 여행을 떠나기 최적의 나날들이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가자니 불편한 심신을 달랠 적당한 상품이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마음에 안 드는 기자가 갈만한 여행은 결코 없는 걸까.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단 하루만이라도 피곤한 현실에서 도망가 마음껏 시간을 허비하고 싶다.



요즘 사람들 말처럼 여행이 ‘힐링’, 그러니까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러 떠나는 거라면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투영한 상품이 개발됐으면 한다.



예를 들어 신규지역, 인기지역, 최근 개보수를 마친 리조트의 상품이 아니라 ‘강원도 당일 기차+텔’, ‘혼자 걷는 영덕 블루로드’ 같은 단순한 일정의 상품에 여행에 어울리는 음악이 담긴 mp3 대여, 시집 한 권, 기차에서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추천간식 같은 걸 함께 묶어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성이나 매출 같은 건 크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는 여행 산업이 단순히 항공과 호텔, 현지서비스만을 판매하는 장사에 그치지 않고 여행전문 집단으로 자부심을 갖고 고객들에게 여행을 통한 진짜 ‘정신치료’의 기회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먹고, 보고, 듣고, 걷는 본능에 충실한 여행.


기분에 맞춰 떠날 수 있는 국내 여행상품, 얼마나 멋진가. 여행업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기자의 말은 웃긴 소리일 수 있지만 기자 생각엔 개별여행, 현지투어 이후의 여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목적에 따라 세분화 되고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도 편안한 ‘개인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