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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서용모-유원대학교 교수
작성자 총관리자 작성일 2017-07-20 13:09:17
내용

 
 
관광(觀光)의 새로운 인식
 
관광을 통해 성공을 이루는 시대 인식할 필요성 있다
 
 
바야흐로 지역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시즌이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 흘려 일하며 오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더울수록 빛이 나는 그 신바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일 년을 오늘을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에게 휴식을 주고 배움을 주는 여행이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국내여행보다는 저 멀리 해외에까지 날아가곤 한다.

특히, 젊은 층의 해외여행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이를 단순히 여행으로 그치지 않고 외국어 공부뿐만 아니라 봉사활동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네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짧게는 수개월부터 몇 년씩 해외에서 생활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렇다보니 최근 국내로 관광을 찾아오는 사람보다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2014년 12월부터 우리나라는 관광수지에서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적자 규모가 최대로 경신했다. 이러한 관광수지 적자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관광은 인류가 더욱 안전한 공간이나 먹거리가 풍족하거나 외부에 대한 자신의 편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이동으로 지금의 관광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지금과 다른 공간에서의 삶을 영위하려고 했다. 문명이 정착되면서 유랑이 점차 특정 공간에의 정착을 하기 시작하고 이들 공간에서의 자원을 공유하기 위한 이동(이를 무역이라고 하자)을 하면서 관광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먼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심지어 다른 자원을 찾아 생명을 담보로 한 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관광의 개념으로는 그리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올림픽과 같은 운동경기를 관람하거나 참가하기 위해 시작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숙박시설 등의 산업도 동반 성장하게 되었다. 이후 종교적 차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이동이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관광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시대의 종교적 깨달음을 위한 여행과 상거래를 위한 이동 등이 성행했으며 심지어 신라시대 화랑들은 팔도를 유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불교가 성행했던 시기에는 더욱 이러한 이동이 성행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관광(觀光)의 어원이 된 관국지광(觀國之光)이 생겨났다. 이는 결국 선진 문물(중국 등)을 시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교가 한참 성했던 시대에도 중국의 선진문물과 사신들의 행렬과 같은 이동이 많았다. 또한 상거래에 대한 활성화로 국경을 넘는 이동이 많아졌다.

우리가 잘 아는 북학파 선비들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학습하고 도입하기 위하여 중국을 자주 왕래했다. 우리가 잘 아는 연암 박지원은 그가 쓴 여행 기행문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 청나라의 노정과 그 노정에서 보고 배운 문물에 대한 느낌을 적고 있다. 그중 연암이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 강을 건너면서 느낀 점을 표현한 대목이 아직도 생각난다. 강물의 기세(氣勢)가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 전포(戰砲) 만가(萬架)와 전고(轉鼓) 만좌(萬座)로써도 그 물 흐르는 소리를 형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몇 자의 글속에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의 에너지를 지금도 느낄 것만 같다.

이처럼 연암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을 내려두고 자연과 하나 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행을 통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자신이 하나 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몰아일체의 여정을 했던 것이다. 이 글에서 연암은 현재 관광이라는 상품을 통해 혹은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새로운 공간에 대해 처하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의 현상학적 집착은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관광이 아니다. 관광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단순히 물리적 축적으로만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주변에도 많은 자원들을 이용하여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이를 통해 많은 관광객의 유입을 도모하고 있다.

국내에서 지방자치 시대라는 정치적 이슈가 어쩌면 지역에 있는 자원들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로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포장하고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먹을거리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고 판매되는 기념품은 정체 불명의 국적에서 만들어진 그런 허접한 문건들이 좌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비슷하고 행사 프로그램조차도 비슷하게 느껴지곤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지역에서 유래한 자원이라고 다른 지역과의 마찰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광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행사는 결국 많은 국고의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우리는 내가 내 돈 내고 관광을 제대로(?) 하는지도 모른다.

연암이 기행문에 남긴 또 다른 여운은 겸손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만물을 이용하는 인간도 결국 좁은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을 이용하는 인간이지만 물 앞에서 겸손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그 당시 현자(賢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늘 부족하고 이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큰 뜻을 깨달은 연암의 태도를 청나라를 가는 관광의 길목에서 배워야할 것이다.

이처럼 관광은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성공한 사람이 관광을 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관광을 통해서 성공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관광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자신을 살리는 이동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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